노아(창6:5-8)

조회 수 2162 추천 수 0 2010.06.06 22:01:43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으로 인해 슬퍼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창6:5-8)

 

"노아"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라멕이 182세에 낳고 노아라 이름하니 뜻은 주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우리가 수고하는 것을 이 아들이 위로한다 하는 뜻인데(창5:28), 이는 영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여덟 번째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있어지게 될 각종 역사들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사람 노아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 번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벧후2:5)

 

아담은 실제로 아담으로부터 10대손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영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그가 여덟 번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족보상으로 여덟 번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노아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을 때 그가 가족들을 모두 방주 안으로 들이고 마지막에 들어갔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를 여덟 번째 사람으로 묘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여덟 번째 사람이라는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8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새 탄생과 새 창조에 해당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 걸쳐서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8이라는 숫자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할례가 난지 8일 만에 행해졌습니다.

 

너희 대대로 모든 사내아이는 집에서 태어난 자든지 또는 네 씨에서 난 자가 아니라 타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자든지 난 지 여드레가 되면 너희 가운데서 할례를 받을지니라.(창17:12)

 

할례가 주는 의미는 바로 그들이 은혜로 구원을 얻은 백성임을 의미하는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오늘날 이방인들이 이러한 것을 행할 까닭은 없지만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거듭남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식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함으로서 구별된 백성이라는 표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특별한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행2:38). 그것은 바로 새로운 탄생, 즉 거듭남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요3:3)

 

둘째로 사역의 시작이 8일 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덟째 날에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부르고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흠 없는 송아지를 죄 헌물로 취하여 그것들을 주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염소 새끼를 죄 헌물로 취하고 또 흠이 없고 일 년 된 송아지와 어린 양을 번제 헌물로 취하며 또 화평 헌물로 주 앞에 희생물로 드릴 수소와 숫양을 취하고 또 기름을 섞은 음식 헌물을 취하라, 하라.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시리라. 하니라,(레9:1-4)

 

우리는 제사장의 사역의 시작이 8일째 되는 날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남과 관계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신학 공부나 특별한 훈련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거액을 들여 공부를 하고 있으며, 또한 각종 성경 공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더욱 많은 지식을 얻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소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일에 있어서 분명한 증거로 바울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는 그 앞에서 고꾸라졌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것은 바로 소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대하여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 잎에 내 이름을 가져가기 위하여 내가 택한 그릇이니라.(행9:15)

 

결국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당도했을 때 안수를 받고 시력을 회복한 뒤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회당을 다니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명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왔음을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일들을 통하여 사역이 단순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장차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게 될 것인가를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사라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노아를 통해 보는 믿음

 

그는 분명히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니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창6:9)

 

그렇다면 어떠한 점에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같은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의 행동은 사실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인정받았던 내용들을 살펴봅시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에 대하여 순종합니다.

 

너는 고펠나무로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 방들을 만들며 역청으로 그것의 안팎을 칠할지니라. ...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그대로 행하였더라.(창6:14,22)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찌 보면 황당한 명령을 노아에게 내리고 계신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거대한 배를 만들도록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그 배를 만드는데 120년이라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에 대한 증거는 이 땅이 죄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신 주님께서 사람들의 남은 날들이 120년이라고 말씀하셨던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6:3). 노아는 이 사실을 믿고 있었고 그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고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

 

그의 행동은 분명히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더구나 그가 이 땅이 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 미쳤다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음이 분명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오늘날의 사람들도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이러한 경고에 대하여 무감각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눅17:27)

 

그들을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고 있을 동안에도 여전히 육신의 일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아무리 복음을 말하고 구원을 얻으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육신의 일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의 인내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상 120년이라는 기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간 동안 방주를 만드는 일을 계속했고, 결국 완성해 냈으며, 전하는 일까지도 계속했습니다. 물론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기근이나 전쟁, 그리고 질병 등과 같은 고통을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갖은 수모와 따돌림,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내는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러한 일들은 노아 시대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는 아벨을 들 수 잇을 것입니다. 그는 주 앞에 온전한 헌물을 드린 이유로 죽임을 당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경계를 당하면서 오랫동안 인내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시 동안은 주님께 순종하는 생애를 살다가도 힘든 순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스스로 넘어지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들에 대하여 매우 경계를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넘어지게 된다면 더욱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 안에 말려들어 정복되면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그들에게 더 나쁘리니 그들이 의의 길을 안 뒤에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명령에서 돌아서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 그들에게 더 나았으리라. 그러나, 개는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고 씻겨진 돼지는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는 참된 잠언에 따라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도다.(벧후2:20-22)

 

우리는 이 시대에도 인내하지 못한 결과로 결국 교회 밖으로 뛰어나간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욱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이 있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구원 얻은 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일 것이며, 또한 구원을 얻게 된다 할지라도 차라리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현재의 삶이 피곤하고 힘들지라도 인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의 본보기 중 세 번째는 가족 구원입니다.

 

우리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잇습니다. 이것은 그의 믿음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가족들에게 존경받는 남편이요 아버지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가족은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롯을 보십시오. 그는 비록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을 당할 때 그의 두 딸들과 함께 구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의 아내는 결국 뒤를 돌아다 본 결과로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후에도 두 딸들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는 근친상간의 죄까지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 걸쳐서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특히 지도자가 될 자들에게는 가정의 안정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은 직분들이 난무해져 있어서 혼란스럽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가질 수 있는 자격에 대하여 논할 때에 바로 이러한 가정과 관련하여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방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딤전3:1-12)

 

가정의 안정은 지나치게 강조해도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안정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가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면 그는 곧 교회를 파괴하려는 것과 같이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는 바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가정을 보십시오. 분명히 노아는 가족들의 후원에 힘입어 방주를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남편과 아버지인 노아의 일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만을 표했다면 그가 방주를 짓는 일에 차질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노아에 대하여 신뢰를 보여주었으며,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구원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단자들은 신앙을 위해서 가정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우리가 가정의 안정이 없는 동안 우리의 신앙도 안정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만이 건장한 신앙을 유지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아의 신앙을 돌아보았습니다. 그에 관하여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하십시오. 그는 분명히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어떠한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랐던 자였습니다. 그의 순종은 결국 그의 가족들을 구원했으며, 또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노아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가 그분과 동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감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올 세상을 위하여 지금 이 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부디 하루하루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소망이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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