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름마다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성경 속의 인물들도 각자의 이름마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는 '위로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셈은 '명성이 있다'라는 의미로 예수님의 명성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으며, 함은 '덥다'라는 육신적인 이름을 가짐으로 육신과 율법의 대표로서 존재됨을 의미하고 있고, 야벳은 '장막을 넓히다'라는 의미로 그들에 의해 복음이 확장되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노아의 가정은 그 이름만으로서 복음의 역사를 쉽게 볼 수 있도록 열어줍니다.
벌거 벗은 노아
노아의 직업은 농부였습니다. 그가 땅을 파고 사는 자였다고 하는 사실은 결국 육신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의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술에 취해 있을 때에는 벌거벗음으로 죄가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체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출20:26)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에서 제사하는 제사장들에게도 하체를 가리우는 반바지를 입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출28:42) 하체는 '죄의 모습' '육신의 모습'의 상징이기 까닭에 드러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복을 입지 않은 청함을 받은 자에 관하여 말씀을 하시면서 약한 자나 선한 자를 불구하고 잔치에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심으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마22:14)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천국에 입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지막 때를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도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여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계16:15) 죄의 상태, 즉 벌거 벗은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에 취해서 바로 자신의 벌거벗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와도 같습니다.(계3:17)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아버지의 하체를 본 함
함은 전형적으로 율법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해 하체를 벗은 채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자 형제들에게 달려가서 고자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를 찾아서 정죄 하는 일이 바로 율법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롬3:19-20) 율법의 한계는 바로 여기까지에서 그의 역할을 끝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역할은 바로 죄를 깨닫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모습을 드러낸 후에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율법의 노예가 되어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에 의지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계속해서 그들의 죄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음으로 더욱 심각한 갈등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더 이상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옷을 입하는 셈과 야벳
함이 노아의 벌거벗음을 고자질하는 동안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해 하체를 가리워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뒷걸음질을 해서 다가오는 것은 전형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체를 보지 않았던 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보시지도 않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며, 더불어 옷으로 가리움은 죄를 감싸주시고 덮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의 사실에서 몇 가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옷이 어떤 것이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벌거벗기신 채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은 네 쪽으로 나뉘었고, 속옷은 제비를 뽑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겉옷은 이방인들이, 속옷은 유대인들에 의해 소유되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옷을 벗어 모든 백성에게 옷을 입히심으로 죄를 덮으시는 모습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 자신은 벌거벗기시고, 수치를 당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죄는 덮어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 죄성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옷을 입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우리의 죄의 모습은 완전히 가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책감 속에서 사는 일은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평안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