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조건(3) 라멕과 그의 아들들

조회 수 502 추천 수 0 2015.02.11 10:32:24

라멕은 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오만한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멕과 그의 아들들을 살펴보려고 하는 이유는 그를 통하여 죄가 어떠한 모양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세상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악의 모양들입니다. 우리가 라멕에 대하여 살펴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본래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과정들과 그 모양들을 알고 바로 서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습관화되어서 바꿀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사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오직 주님의 뜻을 알고 적용하는 삶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살전5:22).


라멕에게는 두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라멕의 두 아내를 통하여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죄의 후손들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회교도들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죄악시 여기고 죄인 취급하는 예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이 죄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라멕의 아내들에 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라멕과 그의 아내를 통해 무엇배울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아내들의 이름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다"라는 이름의 뜻은 "장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실라"라는 이름의 뜻은 "그림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많은 장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있는 우상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종교에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다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종교를 발전시켜갈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라"라는 이름의 의미인 "그림자"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할까요? 그것은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가리켜서 "그림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10:1).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는 것이지만 구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율법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들은 오늘날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화려한 장식과 그림자인 율법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라멕의 맏아들이었던 야발은 장막에 거하는 자들과 가축을 치는 자들의 조상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장막에 거했다고 하는 것은 최초의 집단생활을 시작했던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 "땅을 정복하라"(창1:2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고립되기를 원했으며, 보다 육신적인 안정을 누리려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행을 중단하고 자신들이 살기 좋은 곳을 택하여 정착하였습니다. 또한 야발은 가축을 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양을 지키는 자"(a keeper of sheep)였습니다. 그러나 야발은 "양을 치는 자"(such as have cattle)였습니다. 아벨은 양을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을 하고 지킬 뿐이었지만, 야발은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비록 짐승이지만 그것을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이 되어 왔던 생각들을 깨뜨리고 자신들의 소유를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미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린 세상에서 자신의 소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지키기 위하여 분쟁을 일삼으며, 또한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소유를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가진 소유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맡겨진 것들을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소유들을 가지고 간음하거나, 육체적 쾌락을 즐기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에 쓸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들이 주님의 것으로 알고 보다 귀하게 쓸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유발은 어떠한 사람인가요? 성경은 유발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하프와 오르간을 다루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음악을 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의 역사가 언제부터인가?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유발에서부터 그 역사를 찾아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물론 음악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음악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유발에 의해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음악만큼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놓는데 매우 큰 힘을 나타내며, 그 아름다움과 감동으로 사람들을 쉽게 흥분하도록 돕는 일들을 합니다. 사탄은 음악의 이러한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들어서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래를 하는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일들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으며, 마약과 연관이 있고,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며 가정의 파괴를 부추기고, 심지어 자살하고, 연주 도중 기물을 파괴하며, 슬픈 음악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심한 자괴감을 안겨다 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며 열광을 거듭하고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만들고자 하는 사탄의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동요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음악적인 완성도를 더욱 높임으로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 갈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의 머리 속을 맴도는 음악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것들은 결코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이기보다는 슬픔과 좌절, 그러고 절망적인 상황을 노래하는 음악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악 자체를 거부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사람의 목소리 외에는 악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많은 교회들이 음악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주님은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과 영적인 노래는 주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입니다(엡5:19). 만일 우리가 오늘날 음악이 사탄적이라는 이유로 주님을 노래하는데 인색해 진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노래가 어떠한 리듬과 분위기를 띠고 있는가보다는 바울의 권면대로 우리 마음속에서 주께 노래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아름다운 가락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상관이 없는 노래가 된다면 그것은 매우 가증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두발가인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놋과 쇠로 된 것을 만드는 자들을 가르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시대적으로 봐서 매우 발달된 문명을 살아가는 자들로 보여 집니다. 더욱이 그가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볼 때 오늘날로 말하면 과학자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통해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셨을까요?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들의 공통점은 과학문명을 발달시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와 같은 나라들이 그 대표적인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과학의 발달을 가져다주었지만 결코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우상들을 그들의 제단에 두고 더욱 가증스러운 일들만을 일삼았던 것이 그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악한 것인가요? 우리는 그것을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죄의 모양들이 과학이라는 모양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 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이 가져다주는 문명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여지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부디 세상이 주는 문명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야발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유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던 그를 통하여 그것이 정치라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종 삼고, 가두고,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는 일들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발을 통하여 보는 음악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노래는 모든 부분에 걸쳐서 삽입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풍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시와 곡조로 노래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과학문명도 매우 조심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준다고 너무 쉽게 빠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주님의 교회에 모이는 일을 방해할 수 있으며, 성경에 불신을 심고, 세상에 취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기준을 주님께 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분별하는 일이 우리가 인생을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악함을 알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의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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