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은 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통해 헌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과부가 드렸던 헌금의 액수는 두 렙돈이었습니다. 두 렙돈은 대략 데나리온의 64분의 1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이 여인의 헌금에 대하여 매우 극찬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 렙돈의 헌금은 이 여인에게 있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모든 소유이기도 했습니다(막12:44). 하나님을 향한 이 가난한 과부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헌금함이 놓여 있는 형태입니다. 유대 고대사를 살펴보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열세개의 헌금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헌금통의 형태는 나팔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입구가 철판으로 되어 있어서 동전을 던질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곧 멀리서도 얼마의 헌금을 하고 있는지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두 렙돈 넣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헌금함의 구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이 헌금에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전을 바꾸었고, 헌금함 앞에서 많은 시간을 서서 던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헌금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헌금과 부자들의 헌금을 비교하여 설명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헌금의 액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자의 헌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가르침만으로 볼 때 예수님은 액수가 아닌 가진 재산의 비율에 얼마를 드렸는지에 대하여 더욱 가치를 두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부는 전부를 드렸고, 부자들은 일부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액수보다는 비율에 관심을 두는 것은 청지기적인 정신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닌 모든 재산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만 그것들을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많이 관리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적게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부자는 많이 관리하고 있으며, 가난한 과부는 매우 적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자신들이 가진 것의 일부만을 드리고 있으며, 과부는 자신의 것을 전부 드렸습니다. 물론 그것이 구제를 위해 쓰여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자들의 헌금이 더욱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그것이 유용하게 쓰여 질 것보다, 드리는 자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제나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드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드리는가에 대한 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여인의 행동을 보신 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이 과부가 엄청난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이 여인의 다음 행보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만 예수님의 마음에 합한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헌금에 대한 생각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드림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될 복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가치있는 드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드림은 오직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온전히 드리는 것임을 이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관연 하나님께 진정한 드림을 실천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