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곧 복음으로 설명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규례가운데 세례(침례)는 바로 이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간증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자신이 먼저 그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일치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신앙의 고백이 바로 그분의 죽으심 가운데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들어 온 자만이 부활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죽은 자만이 부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능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롬1:4). 만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건이 없었다면 그분은 비록 하나님이셨지만 죄 가운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은 오직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6:5)고 말합니다. 주님의 희생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졌을 때 우리 또한 부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주님의 보혈을 믿고 고백을 하게 되었을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있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그분의 죽으심 아래 있다는 것은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라고 말합니다. 또한 베드로 역시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고 말합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싸움은 이 땅을 사는 동안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2)고 말합니다. 또한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딤전6:19)를 쌓을 것을 권면합니다.
사람들은 힘겨운 인생 속에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멈추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사는 동안 마귀는 이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키기 위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바울의 인생은 결코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 기뻐하였고, 또한 장차 받을 상을 생각하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의 시간들이 놀라운 영광으로 변하게 될 것을 소망하면서 풍성한 삶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