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주님의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의 이면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온 맘을 다해 수고하는 것들에 대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주님의 일들을 행하면서 얻어진 결실들은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13:21)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곧 주님께서 일하시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과 더불어 다양한 방법으로 그분의 사역을 하십니다. 그것이 순종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6)라는 말씀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의 부요함과 가난함, 그리고 각종 기적과 심지어 연약함까지도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들에 대하여 “불평이나 시비가 없이”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그의 서신을 통하여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2:8)고 권면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오히려 상대방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4:9)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곧 상대방에게 불만이 있을지라도 오히려 그에게 선대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세상의 빛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명령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들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실을 바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을 통하여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정직하게 살면서 선하게 살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행실을 통해 하나님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본이 되는 생활을 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부끄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실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세상을 향해 “생명의 말씀을 제시”함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힘쓸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이라고 평가합니다. 그의 삶은 비록 비참하게 보였지만 스스로 매우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하여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갈2:2)고 다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1)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삶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함과 동시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고 고백함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비록 세상에서는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보낸 자이지만(고후11:23-27), 그는 성공한 복음 전도자이며, 주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