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적(5) 바다위를 걸으심(마14:22-33, 막6:45-52, 요6:16-21)
즉시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을 강권하사 자기가 사람들을 보내는 동안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들을 보내신 뒤에 기도하러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저녁이 되매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더라. 그분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그들에게 반대로 불므로 그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하시거늘 그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그것이 영인 줄로 생각하여 소리 지르니 이는 그들이 다 그분을 보고 불안해하였기 때문이더라. 즉시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그들에게 가사 배에 오르시매 바람이 그치므로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서 한량없이 심히 놀라며 이상히 여기니라. 이는 그들이 마음이 굳어져서 빵의 기적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더라. (막6:45~52)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 제자들을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무리들을 돌려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서 산으로 오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피하여 산을 오르신 경우들은 종종 목격이 되는데(막1:35-39, 14:26-42),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다거나 혹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있었을 때 행했던 일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세 가지의 모습과 동일한 자세로 예수님에게 접근합니다. 그것은 기적을 행하고, 빵을 공급하며, 십자가를 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주님의 일을 행하는 많은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유혹을 받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와 사람들로부터 집요하게 받는 유혹들에 대하여 피하시기 위해서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왕이 되거나, 십자가 없는 사역의 완성을 결코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역에 방해를 받게 되는 순간 홀로 산에 으르셔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바다 위를 항해하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을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고, 풍랑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풍랑과 싸우고 있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바다 위를 걸어 그들 앞으로 지나치십니다. 여기서 밤 사경쯤 되는 시간은 새벽 3-6시쯤 되는 시각으로 매우 피곤하고 지쳐있는 제자들의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앞을 지나치실 때에 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바다 위로 걸으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보는 것이 실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서 볼 수 있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성경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종종 지나쳐 가셨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출33:19-22,왕상19:11,욥9:8,11). 왜 이처럼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시지 않고 지나쳐 가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당하는 문제 앞에 하나님 자신이 함께 하고 계심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람을 만나 풍랑으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에 있는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심으로서 그들을 안심시키고, 한편으로는 믿음을 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그것이 영인 줄로 생각하여 소리 지르니 이는 그들이 다 그분을 보고 불안해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문제 앞에서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배를 타기 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목격하고서도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이 문제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설마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시고, 자신들에게 다가올 수 있을까? 하는 의심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문제를 만났을 때에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곁에서 머물러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두려움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문제를 예수님께 맡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더욱 깊어질 뿐입니다. 사람들의 속성은 원래 악하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악한 결과만을 낳을 뿐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내려놓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이러한 모습도 성경의 많은 곳들로부터 표현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시115:9, 118:5, 사41:4,13, 43:1, 44:2, 51:9). 문제를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문제를 만난 자들이 당황하고, 의심한다면 그는 문제를 해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평안은 그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있던 배에 오르십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는 다시 잔잔해집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모든 자연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이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놀라며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여전히 앞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매우 놀라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영적으로 어둠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생활 속에서 수많은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있지만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주님의 간섭에 대하여 경이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수많은 문제들 사이에서 친히 해결하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마음이 굳어져서 빵의 기적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의 생각 이상의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자신들이 직접 능력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순간까지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나, 강할 때에도, 시험을 당할 때나 형통한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우리의 곁에서 머물러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주님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들까지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평안과 형통한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주님과 같이 우리의 눈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