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서 자라가라

조회 수 4299 추천 수 0 2011.06.18 11:21:33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지식에 관하여는 매우 무시하는 경우들을 목격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식과 영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많은 부분에 걸쳐서 지식에 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매우 능력 있는 사역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가 매우 말을 잘 하고 병도 잘 고치고,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샐제로 말도 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질병조차도 고칠 수가 없었고, 또한 많은 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했던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능력 있는 사역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고후11:6)

 

지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얻기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잘 못된 진리들이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이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오직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바르게 알고 배운다면 그것은 반드시 영적으로 큰 유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1. 지식은 세상 것을 버리도록 돕는다.

 

참으로 모든 것을 확실히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3:8)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세상과의 분리된 삶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교회 안에서 일정한 법을 만들어 두고 지키게 하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 십계명을 붙여 놓고 지키도록 가르치며, 또한 아니면 성도들 간에 약속으로 규례를 만들어 마약, 음주, 영화관 출입 등과 같은 것들을 규제하게 함으로서 세상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도덕적으로 매우 금욕적이고도 경건한 삶을 살도록 요구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여전히 돈을 사랑하며,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며, 욕심으로 가득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나친 욕심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성도들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사역자들조차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넘어지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지나치게 일을 몰두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의 원활함을 위하여 대부분 기도에 몰두하지만 상대적으로 성경을 묵상하며 지식을 쌓아가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중에 세상적인 것들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결과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쌓아가는 일에 더욱 열중해야 하는 이유는 지식으로 인하여 세상의 것들을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인하여 자신의 가진 명예, 세상의 지식, 가문과 같은 자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만일 지식이 없다면 그는 버릴 수 없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오히려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것들을 버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도덕적인 훈련과 강요로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채워졌을 때 내 안에서 세상의 사악한 것들은 모두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2. 지식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13)

 

주님의 교회는 한 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모인 구성원들은 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성도들 간의 이견으로 인하여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하나의 몸이라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에 대하여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들을 가진 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은 서로가 돕고 협력하도록 해서 한 몸으로서 활동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활동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근원적으로는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어야만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들도 봅니다. 그들은 각종 레크리에이션과 봉사활동, 그리고 각종 행사들을 통하여 함 몸이 되기 위하여 훈련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에는 무의미한 모임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몸은 하나가 되어 움직이지만 생각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일치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1+2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3이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된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지식을 통하여 숫자의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을 갖도록 도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알게 된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합리적인 자세로 교회 안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많은 이들은 환상과 꿈과 경험들을 의지하면서 결국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게 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가 같은 생각과 합리적인 사고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노력하고 있지만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는 매우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교회의 분열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며, 교회의 한 몸 됨을 인정하지 않고 떠도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만일 그들이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바로 알게 된다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교회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믿음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 됨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3. 지식은 자라도록 돕는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1:10)

 

믿음에도 분량이 있습니다(12:3).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믿으면 그만이지 굳이 성장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 성장을 위해서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고전1:5). 누구나 성장을 원한다면 그는 충분한 양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굶주리고 제 때에 양식을 섭취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영양실조의 지경에 있는 자가 성장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오직 양식을 얻기만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영양실조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충분한 양식의 공급이 없이는 자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장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지식을 얻기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를 자라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음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한 지식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부요하며, 그 안에서 헤아릴 수 없는 판단과 찾지 못할 길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33).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풍성함과 부요함을 더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결코 배우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남들을 훈계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할 것입니다(15:14). 그것은 성장의 또 다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듣는 데에 익숙한 오늘날의 성도들을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열심히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 지식을 쌓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성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4. 지식은 사람을 새롭게 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3:9-10)

 

무엇이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만으로 충분히 새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거듭난 것이지 새로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태어난 것만으로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매일의 양식을 섭취해야만 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새로운 삶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기대한다면 영적 매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만 합니다. 그 안에서 매일 변화를 겪게 될 것이며,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특별한 은혜가 임했을 때 지신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변화가 오랜 시간을 두고 변해가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상태도 오랜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되어져 갈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식이 없는 자가 새로워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하고, 어제와 다른 경건한 삶과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삶을 계획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새로운 삶을 원하고는 있지만 지식을 얻는데 게으른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봉사하고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하면 새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이 놀라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능력 있다는 목사들을 찾아 기도를 받아보기도 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자신이 새로워질 수 있는 길을 잘 못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며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먼저 성경을 손에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훌륭한 성경 교사를 찾아서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5. 지식이 없는 열심은 의미가 없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10:2)

 

우리는 간혹 교회 안에서 매우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합니다. 그들은 매우 헌신적이며, 때로는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과 시간을 드리고, 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의 열심이 주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교회 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이라면 바울이 얼마나 열심이 있는 자였는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열심 당원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가득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심지어 먼 도시(다마스커스)까지 가서 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달려갔던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열심이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핍박을 당하는 자가 되었고, 같은 열심을 품었지만 이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는 열심과 알지 못하는 열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이 주님의 일에 대하여 열심을 내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만 하고, 배운 말씀을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열심을 내어야만 합니다. 만일 지식을 얻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자칫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배운 경험과 전통을 잣대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여 이단으로 내몰고 때로는 분열을 조장하기도 하며, 심지어 파괴하고 욕하며 상대방을 향해 저주를 하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를 위해 그러한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선한 방법이 아니며 주님께서 전혀 기뻐하실 만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일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충성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맹목적인 열심은 오히려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먼저 애쓰고 주님의 진리가 깨달아지고 그분의 말씀에 충성했을 때 그의 열심은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한다면 먼저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지식은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1:77)

To give knowledge of salvation unto his people by the remission of their sins,

 

일반적으로 구원과 지식이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매우 반대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 없이는 영접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이 무조건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은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무조건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하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옳은 것이기는 하지만 온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듣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자신이 죄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하고, 또한 그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조건 예수님을 믿는다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고, 묻이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다고 말한다면 그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서 병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복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속은 것입니다. 구원은 그렇게 단순한 표적으로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 배우지 못한다면 그에게 진정한 구원은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얻게 하는 지식에 대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지식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른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사실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영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구원과 지식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온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 지식을 얻는 일에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지식은 사랑을 요구한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8:1)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1:9)

 

이제 우리는 지식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은 지식만으로는 결코 주님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가진 지식이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하고, 또한 주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지식이 그 자체로만 그의 내면에서 머물러 있다면 그는 결코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많은 곳을 통하여 지식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대부분 지식이 있는 자들은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는 익숙합니다. 그들이 지식에만 머물러 있다면 결국 분열과 다툼과 아픔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기도 합니다. 그 까닭에 성경은 그 위에 사랑을 더해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주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이 주님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되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또한 보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는 많은 착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뛰어난 지식을 가지면 주님이 쓰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고, 심지어 박사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고 뛰어난 논문을 발표하여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실만으로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기 위해서 주님의 사랑을 먼저 깨달을 필요가 있으며, 또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결코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식이 있는 자에게 사랑은 특히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가진 검()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 칼이 우매한 자에게 들려지게 된다면 많은 이들은 그 칼에 죽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칼이 선한 자의 손에 들려진다면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 즉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지식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8.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식이 오히려 영적 생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사탄에게 속한 거짓 선생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만 하며, 또한 열심히 묵상하는 훈련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며, 장차 주님 앞에 귀하게 쓰일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얻는 것 못지않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칫 지식만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묘하게 사탄은 그를 이용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힘쓰십시오. 성경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알아 실천하기를 힘쓰십시오. 그러한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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