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한 조건들을 바울은 목회자(감독)의 기준으로 삼았을까요? 목사는 많은 영적 자녀들을 낳는 자들입니다. 자녀에게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한다는 것은 곧 존경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가정의 자녀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면 많은 영적 자녀로부터도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능력 있게 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누가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할까요?
가정의 자녀들은 목회자의 생활을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이미 한 몸으로 철저히 순종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자녀는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그가 부모를 보는 입장은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부모가 자녀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항을 하고 불만을 털어놓는 일이 허다한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을까요? 그것은 자녀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녀들에게 목양하는 일을 이해시켜야만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대답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목양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녀들로부터 협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변의 많은 분들이 목양의 일들을 자녀들에게 숨기려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것은 대부분 가난하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환경이 좋아져서 목회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목회자의 가정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만일 부모가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가난과 수치스러운 일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자녀들 역시 그 일들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혜로운 목회자라면 주님으로 인하여 당하는 어려움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자녀들에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로 인하여 교회의 재산을 가로채는 목회자들의 모습들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사역을 시작할 때에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이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녀를 남들보다 더 낫게 키우려다 보니 많은 돈이 들어가고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존경을 받는 목회자의 자녀들은 결코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보내고, 유학까지 시킨다 할지라도 그것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로서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자녀를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성해 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없이는 결코 자녀들로 하여금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