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주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주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주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가 부르심을 입었던 시기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그는 남 유다 왕국의 11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을 다스렸는데, 처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훌륭한 왕이었지만 나중에는 교만해져서 결국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려다가 나병에 걸려 죽은 불행한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이사야 6장은 소명(부르심)과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사역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고 있다는 것은 곧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사역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6장의 내용을 통하여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어떻게 부르시고, 또한 그들을 통해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신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을 하는 자라면 누구나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이사야가 먼저 경험한 것은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본 것입니다. 그는 주를 본 소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1-4)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사야가 본 것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거나 혹은 성전의 모습을 연상하여 마치 그림을 그리듯 말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이 환상을 본 적에 대하여 의심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이 놀라운 관경을 목격하였고, 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탄합니다.


그가 환상을 보고 내밷는 첫 마디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주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라고 말합니다. 그가 주를 보고 처음 발견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 자인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얼마나 죄인의 모습을 기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도 자신에 대하여 “죄인중의 괴수(우두머리)”라고 고백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사역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자였지만 주님 앞에 섰을 때에는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자신을 부정한 백성 중에 있었던 자로 표현하고 그 앞에서 통회하는 순간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날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입술에 대고 말하기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는 자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말씀 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스스로 의로운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오직 자신이 죄 사함이 필요한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는 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부르심이 있기 전에 먼저 죄 사함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주님이 먼저 부르심


죄 사함의 은혜가 있은 후 주께서 이사야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8) 이 질문은 이사야를 향한 부르심(소명)입니다. 이는 곧 주께서 먼저 이사야에게 다가가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일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를 매우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대부분의 사역자들, 곧 쓰임을 받았던 자들은 언제나 주께서 먼저 다가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었던 아브람에게 다가가셔서 그의 고향을 떠나 자신이 지시할 땅으로 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애굽의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모세를 만나셔서 그로 하여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도록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울의 때 새로운 왕에게 기름 붓기 위해 이새의 집을 찾았던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던 것은 혹시 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다윗의 형제들이 아니라 양을 치고 있었던 다윗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고 있었던 베드로를 찾아서 그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약속과 함께 먼저 그를 부르셨고, 그물을 깁고 있는 요한을 부르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바울을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셔서 그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주님의 종이 공부를 통해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구약의 제사장과 같이 세습의 방법을 통해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훌륭한 성경교사나 운영자가 될 수 있을지라도 훌륭한 주님의 종으로서 살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이 되었다는 것은 곧 부르심(소명)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자신이 과연 부르심을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준비된 자의 자세


주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 이사야의 대답은 마치 기다렸다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 이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준비 되었습니다. 나를 보내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그는 이미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자리라도 기꺼이 가겠다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는 당시에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서 선지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이 있기 전까지는 진정한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사야에게 주께서 나타나셨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서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준비가 세상에서의 물질이나 명예, 권세나 지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이 때때로 쓰이는 경우는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건한 삶을 살며, 주께서 쓰시겠다고 부르실 때 기꺼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된 자들입니다. 주께서는 그분을 향한 열정과 능력,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되어 준비된 자들을 쓰실 수 있습니다. 그 일들을 위해 인내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주님을 다가가셔서 그와 더불어 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전할 것인가?


이사야는 준비된 자로서 부르심을 받아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명령이었습니다. 주께서는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9)고 말하도록 하시고,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10)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주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11,12)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남쪽 유다에 대한 멸망에 대하여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사야의 입장에서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명령이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자는 백성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선포합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게 될 것을 염려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는 의도보다는 그 명령을 따라 말하는 이사야에 모습에 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일을 백성에게 말하였고, 결국에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매우 황당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사야는 종으로서 사는 것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는 광역에서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아가 120년에 걸쳐서 방주를 짓는 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주님의 명령의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주님의 종이라면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대로 전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루터기


하나님께서는 이미 남쪽 유다의 멸망에 대하여 결정하셨습니다. 그들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분의 일이 남아있게 되어도 그것조차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얼마나 참혹하게 명망하게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거룩한 씨가 남겨질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13)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그루터기를 통하여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교회사를 통해 주님의 교회는 수많은 멸망의 위기를 거쳐 왔습니다. 그 속에서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교회 안에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이었는지, 아니면 믿음의 사람들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람들, 혹은 믿는 자들의 부패함과 타락으로 인하여 멸망을 계획하시고, 그들이 무너질지라도 또 다시 일으키실 그루터기를 남겨두셔서 그것으로 다시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비록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항상 하늘을 소망삼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사야는 부르심(소명)을 입은 자들에게 매우 모범적인 선지자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그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하기 위해서 언제나 준비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분의 명령이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벗어날지라도 우리의 신념과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사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해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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