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숙제는 단순히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문화적인 적응을 끝냈다 할지라도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면 그 사역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문화를 복음에 조화를 시킬 수 있는지가 선교사에게 주어진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초기 선교사들은 대부분 문화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타문화를 지배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으로부터 파송되었고, 그들은 여러 식민지들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가장 효과적인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민족이 열등(미개)한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선교사들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월한 상태에서 파송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는 민족의 문화가 더욱 우월한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그들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강대국으로부터 파송되어지기 보다는 2/3세계에 속한 사역자들에 의해 파송되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 때 매우 열등한 문화적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이 땅에 토착화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전통적인 문화보다는 이미 서구화된 문화 환경이 되어 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들은 선교사들에게 사역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었고, 수많은 선교사들은 이 땅에서 매우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방법들이 결실을 맺기에는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과 같은 다양한 정보수단들로 인해 문화적 격차가 매우 좁혀졌고, 비록 열등한 민족들이라도 그들만의 전통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타문화들에 대하여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방법들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경의 원칙을 벗어난 타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욱 큰 실패를 안겨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