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적으로 죄 가운데 놓여 있는 사람들, 즉 이미 사망 선고를 받고 사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행위를 선교의 기본 정신이라고 한다면 최초의 선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를 위해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죄 가운데 놓인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이후로도 끊임없이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만나셨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많은 약속들을 하심으로 선교의 본을 보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시대 이후로 사람들에 의해 진행이 되었는데,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짓고, 이 땅에 심판이 있게 될 것을 경고함으로서 사람들을 방주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가족만이 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그의 행동은 사람이 직접적인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을 인도하는 본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를 통하여 마지막 시대에 전파되는 선교의 의미를 볼 수 있다면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에 따라서 선교를 통해 주어지게 될 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이 들어간 민족들은 큰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령 예수님 이전의 세계는 동양이 서양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양에는 철학과 문화, 그리고 앞 선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양은 그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야만적인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서양으로 먼저 들어가게 됨에 따라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로마는 이를 활용하여 태양신과 기독교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가톨릭이라는 교회를 만들어 종교를 통합했고, 이후로 정치, 경제 문화를 그 토대 위에 발전시켜서 오늘날에는 오히려 동양의 문화를 앞지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보는 선교는 이전에 있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시대 이후로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틀 안에서 매우 고립된 문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단행할 때 그들 가운데에는 이스라엘 자손 외에 많은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었지만(출12:38,48), 그들의 그들만의 법을 만들고 그 안에서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선교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주변의 민족들에게 율법을 근거하여 법률을 제정하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가령 도둑질이나, 간음, 살인과 같은 것들이 이전에는 아무런 죄 의식 없이 행해질 수 있었지만 율법이 정해진 이후로는 자신이 행동한 것들이 죄인 것을 알 수 있는 장치가 마련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민족들은 그들만의 법을 만들고 그 안에서 행동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정해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이 일들이 율법을 통하여 완성된 것입니다. 즉 율법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전해졌습니다.
성경이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쓰여졌다고 해서 구원이 그들에게만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착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율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이방인의 구원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가령 살렘 왕 멜기세덱, 모세의 장인 이드로(출18:1-12), 모압의 대언자 발람(민15:1-), 가나안인 라합(수2:2-21)과 같은 이들은 이방인이었지만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