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모욕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시편 1편이 가르치고 있는 교훈은 시편 전체의 가르침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편 23편이나 73편, 119편과 같이 많은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시가 있기도 하지만 시편 1편은 그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 가장 먼저 말씀하셨던 부분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제는 “복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7장에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면서 가장 먼저 가르치셨던 주제도 역시 “복 있는 자”였습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모욕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에 대하여 복 있는 자로 언급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영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을 베푸는 자, 마음이 순수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 나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말을 듣는 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마5:3-12), 그것은 내용으로 볼 때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시편에서 말하고 있는 복 있는 자들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시편 기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약하면 결국 영적인 사람과 육신적인 사람으로 비교될 수 있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계획대로 걸으며, 죄인들의 길에서서 걸으며, 모욕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은 자들”을 육신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를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 있는 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아마도 재물이 많고, 자녀들이 공부 잘하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며, 사회적으로 높은 직위에 있거나, 큰 권세를 지니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칭송을 듣는 자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마음껏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복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매우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복 있는 자는 그분의 말씀을 기뻐하고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물론 말씀 안에서 사는 자는 결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모욕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복 있는 자입니까? 그 대답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답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