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우벤

조회 수 3477 추천 수 0 2010.06.05 09:20:33

르우벤아, 너는 내 맏아들이요, 내 능력이요, 내 힘의 시작이요, 위엄이 탁월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 그러나 네가 물과 같이 불안정하여 탁월하지 못하리니 이는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그것을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49:3~4)

르우벤이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였던 레아가 자신의 비천한 처지를 긍휼히 여기시고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레아는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자 아들을 기다렸고,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큰 영광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르우벤은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아브라함 이후로 선택받은 그들의 민족을 이끌어 가야만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야곱은 유언하기를 그가 물과 같이 불안정하여 탁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매우 유능한 자였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실패한 인생으로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결코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의 이모이자 아버지의 또 다른 아내였던 라헬과 어머니가 서로 자매지간이면서도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이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심한 정서적인 장애를 일으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결코 우연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범죄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안에서 보는 르우벤은 매우 효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추수하는 과정에서 얻은 합환채(mandrake)를 어머니에게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특별한 식물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는 즉시로 그의 어머니에게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르우벤의 행동에 대하여 시기하던 라헬이 이 합환채를 얻고 대신 남편 야곱을 레아에게 들이도록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 후에 레아는 야곱과 더불어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게 됩니다(창30:14-21).

르우벤의 효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형제들에 의해 요셉이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되자 그는 요셉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가 이렇게 했던 이유는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에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가 요셉을 자기 아버지에게 건네주려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37:21-22). 즉 그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그의 형제들의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던 요셉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의 아버지를 더욱 생각하여 염려를 끼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요셉을 이집트(애굽)의 종으로 팔아넘긴 이후의 행동은 그가 속마음이 어떠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갔다는 말을 결코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야곱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상심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요셉의 옷에 양의 피를 묻히고 아버지에게 그 옷을 확인시키고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통곡하는 아버지를 위로합니다(창37:18-30). 그의 행동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칭찬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맏 형으로서 탁월한 면을 지니고 있었던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면들이 언제나 선하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 레아와 이모인 라헬과의 갈등 속에 자라면서 그의 행동에서도 상한 감정이 그의 몸으로 표출되는 일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모였던 라헬의 몸종이자 서모이기도 했던 빌하를 농간함으로서 복수심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일은 결국 맏형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처신을 함으로서 가정에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맏아들인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맏아들이라도 자기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그의 장자권이 이스라엘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들에게 돌아갔더라. 계보(系譜)는 장자권에 따라 계수할 것이 아니니 (대상5:1)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그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제사권은 레위에게로, 통치권은 유다에게로, 상속권은 요셉에게로 넘어감으로서 일개 소수 지파의 족장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범죄가 하나님의 선택, 즉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2지파가운데 한지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계속되고 있지만 르우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용되어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 안에서 바울의 놀라운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을까 염려함이로다. (고전9:27)

바울은 분명히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버림을 받을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 혹시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많은 곳으로부터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토록 자기 자신의 몸을 억제하면서 복종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그는 버림을 받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는데 그가 왜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까? 아니 그가 버림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르우벤을 통하여 그가 말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이방인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자였습니다. 그의 부르심은 확실한 것이었고, 그는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이일들을 위해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하지 않다면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언제나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를 힘썼고, 그가 로마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항상 깨어 있어서 죄를 멀리하고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르우벤은 자기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죄에 내어 줌으로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결국 죄로부터 자신을 얼마나 방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죄의 유혹에 대하여 언제나 경계하십시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쓰실만한 도구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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