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아무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외적인 행동으로 판단하고 평가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삶을 살면서 덕과 지식, 그리고 절제와 인내, 경건과 형제의 우애를 말하는 것도 그러한 행동들이 사람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일을 행함에 있어서 열심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당연히 힘써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치를 높이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에서 보듯이 믿음에서 시작한 것이 마지막에 도달할 때에는 사랑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사랑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바울과 요한 같은 사도들에게도 동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바울과 같은 경우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분명하게 사랑의 가치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항상 있어야만 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 제일이 사랑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매우 강경한 어조로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려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랑이 없으면 결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 내면에 사랑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오히려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는 점도 그가 매우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 아무리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까닭에 많은 교회들은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이루며 살아가려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교리와 종교 의식, 그리고 적당한 구제와 선교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합니다. 물론 그들의 방법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있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들 위에 반드시 더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미 바울도 성경을 통해 경고했듯이 아무리 많은 능력과 구제, 그리고 헌신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너무도 많은 이들이 헛된 일에 자신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헌신이 매우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해 질 필요가 잇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더욱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