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
인내 즉 오래 참음에 대한 교훈은 이미 성경의 많은 곳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언제나 되새겨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내인 것 같습니다.
인내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성경 안에서 욥이라는 인물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에게서 인내를 배우도록 권면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당대에 의인이었고, 많은 재산을 소유한 자였으며, 존경을 받을만한 많은 요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도 환난을 당했을 때에 초라한 환자로서 매우 연약하며,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로부터도 그는 버림을 받는 매우 불쌍한 처지가 된 것을 보면 그는 결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간 사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매우 힘겨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으며, 비록 이 땅에서 불행해 질지라도 장차 다가 올 세상에서 그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를 가장 위대한 인내의 사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그의 처지가 가장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 앞에 자신을 더욱 낮추고자 했던 그의 마음은 마치 귀한 보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인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떠한 일들에 대하여 참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인내는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든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이겨내는 것입니다. 비록 그 결과가 이 땅을 사는 동안 아름답게 맺어지지 못했을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 올 세상에서 얻게 될 보상을 바라는 것입니다.
인내 즉 오래 참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한 것이며, 또한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형제 사랑을 이루어 가는데 가장 우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오래 참는 것입니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닌 오래 참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한 순간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분노의 감정을 버리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견디어낸다면 주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인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