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인 무리와 양떼와 소떼와 심히 많은 가축도 그들과 함께하였더라(38)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집트 땅을 빠져 나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도 섞인 무리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과 결혼한 자들이나 이집트의 종들, 또는 양을 치며 유랑생활을 하던 목자들이나 각종 기적을 보고 따라나선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구원함에 대한 섭리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을 이방인이라 하여 상종하지 않았던 사실을 들어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구원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성경의 많은 부분에 걸쳐서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여리고의 창녀 라합도 이방인이었지만 구원을 받았으며, 모압 여인 룻도 마찬가지로 이방인이었지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방인 구원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건 가운데 하나는 요나를 통해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이방인들인 니느웨 사람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 항을 향했고, 배에 오른 그는 배의 맨 밑에 숨어 있었지만 결국 주께서는 그를 끌어 올려 바다로 던져지게 하시고, 고래의 뱃속에 들여보내시고, 요나가 회개를 한 후에야 꺼내셔서 결국에는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그들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돌아 온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나와 같이 착각을 합니다. 구원이 극히 제한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구원이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대상을 구분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말도록 한 것은 그들이 이방인과 같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분리되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가증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지, 그들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은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사람일지라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라합과 같은 창녀, 마태와 삭개오 같은 세리(매국노 취급을 받았던 세금징수원), 바울과 같은 포악한 관원들이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군들이 되었던 사실들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결코 세상적으로 건전하고, 성실하며, 의로운 사람들만이 구원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무지하며, 사악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그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자신의 터전을 과감하게 버리고 소망의 땅을 향하여 떠났던 섞인 무리들이 그들과 더불어 광야에 이르렀듯이 오늘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