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이 이스라엘 자손 위에 세운 자들 곧 그들의 관원들을 때리며 요구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벽돌 만드는 작업을 예전과 같이 다 마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14)
우리는 어떠한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가? 그 대답을 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떠나야만 하는가? 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지도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고 힘겹게 일을 시키면서도 과업을 완수하는 것이 즐거움이며, 행복이자, 사명입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부패된 지도자들 밑에서 충성을 다하던 자가 훗날 역사의 심판대라는 이름으로 감옥에 갇히고, 명예를 실추 당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행한 것이 유죄냐? 무죄냐?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두 가지의 답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의 편에서 본다면 무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당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당연히 유죄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 모두가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형을 당해 죽었거나,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비밀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를 지도자로 삼느냐에 따라서 장차 받을 심판대에서 우리의 자리가 결정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도자를 잘 못 설정해두고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는 결국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욱 혹독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은 파라오의 입장에서 볼 때에 매우 충성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매우 충성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었으며, 그분의 일을 가로막고 있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바울은 처음에 열심당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진리를 선포하는 자들은 당연히 감옥에 가두거나 죽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이 이단으로 믿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기 위해서 그는 여기저기를 뛰어 다녔습니다. 그의 열심은 온 유대 땅에 소문이 났고, 그가 가는 곳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이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그 일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자였습니다.(행8:1)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을 위한 일들로 생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왕국에서 칭찬을 받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난 이후로 그러한 생각은 매우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후에는 오히려 핍박을 하는 자에서 핍박을 당하는 자가 되어서 복음 전도자가 되었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자들이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또한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매우 사악하여 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배도하고, 세상과 타협하여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과연 우리는 누구를 지도자로 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오직 유일하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음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