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하 20장 20–23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너희는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여 나아가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서로 쳐서 멸하였더라.”
이 거룩한 헌신예배에 서 있는 여러분은 교회의 가장 앞자리에 서 있는 분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칼이나 창이 아니라 찬송과 고백으로 서 있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전쟁의 방식이 사람의 방식과 다름을 보여 주셨고,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찬송이 앞서 갈 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 시대의 유다는 국가적 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암몬과 모압, 그리고 세일 산의 연합군이 몰려왔고, 유다는 군사적으로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도 두려워했고 백성도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 여호사밧은 칼을 먼저 들지 않았고, 전술회의를 먼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섰고, 온 회중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대하 20:15).
이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이 택한 사람들은 장수도 아니고 용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노래하는 자들, 곧 찬송하는 자들을 택하여 군대 앞에 세웠습니다. 이 장면은 성가대의 영적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찬송은 전쟁의 뒤편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에서 가장 앞서는 사명입니다. 찬송은 분위기를 바꾸는 음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찬송이 단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영적 전투의 무기’임을 증언합니다. 여호사밧의 성가대가 입을 열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노래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 하나님이 움직이셨습니다. 성경은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전쟁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찬송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찬송은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선언입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적군은 눈앞에 있었지만, 찬송대는 이미 승리를 노래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찬송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바로 이런 찬송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찬송의 전쟁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사사기 5장을 보면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군대의 장관 시스라를 물리친 후에 부른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노래는 단순한 전승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온 회중 앞에 선포하는 신앙의 찬송이었습니다. 드보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에돔에서부터 나오시고 세일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물을 내렸나이다”(삿 5:4). 찬송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하게 하고, 백성의 믿음을 다시 세웁니다.
또 다른 장면은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바울과 실라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절망의 밤이었고, 침묵해야 마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그들이 찬송할 때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슬이 풀렸습니다. 찬송은 감옥의 문을 여는 하나님의 열쇠였습니다.
찬송은 항상 ‘밤중’에 울려 퍼집니다. 환경이 밝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울려 퍼집니다. 성가대의 사명은 예배의 앞자리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찬송은 회중을 대신한 기도이며, 교회를 대신한 신앙고백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수없이 많은 전쟁과 위기 속에서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 28:7). 다윗에게 찬송은 전쟁의 뒤에 오는 축하가 아니라, 전쟁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성가대 헌신예배를 드리는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왜 찬송하는가, 나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가.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노래는 박수로 끝나지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송은 하늘의 문을 엽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은 말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송의 대상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며, 그 마음의 중심은 감사입니다.
찬양하는 목소리는 단순한 음정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입니다. 화음은 교회의 기도이며, 헌신은 하나님 나라의 전쟁에 참여하는 거룩한 사역입니다. 때로는 연습이 힘들고, 봉사가 부담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찬송하는 자들을 통해 싸우시며, 찬송이 앞설 때 원수는 스스로 무너집니다.
오늘의 시대도 여호사밧의 시대처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교회는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약화 속에서 흔들리고, 성도들의 마음은 지치기 쉽습니다. 이때 성가대의 찬송은 교회의 영적 호흡이 됩니다. 찬송이 살아 있는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찬송이 끊어지면, 믿음도 식어갑니다.
오늘 이 헌신예배를 통해 다시 한번 결단하십시오. 우리는 노래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찬송으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 때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이 원수를 물리치십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49편의 말씀으로 축복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성도들의 입에는 하나님의 찬송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시 149:2–6). 찬송은 칼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찬송이 교회를 살리고, 헌신이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앞당기게 될 줄 믿습니다. 찬송이 앞서 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며 우리 가운데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