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과 행함에 관한 논쟁은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구원의 문제까지 연결하여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이라고 주장을 하는가 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을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행위구원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을 통하여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라는 표현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서 이 두 가지가 별개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일하게 활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약속의 말씀대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문제와는 관계없이 그들은 서로가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가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신분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그들에 대하여 기도할 때에 이 일들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매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정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베소 성도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마귀들의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 곳에서 수많은 거짓 전도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그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리되고, 분별력 있는 삶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령 오늘날 서로 다른 내용의 성경이 얼마나 많이 보급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이방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의식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고, 어떤 이들은 지식으로 복음을 이해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리된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헌금과 봉사, 주일성수와 같은 것들을 충실하게 행하면 구원받을 것처럼 말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교회나 목사가 구원을 대신해 주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워낙 교묘한 사탄의 속임수에 많은 이들이 농락을 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형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칭찬을 받을만한 것입니다. 그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기초에 근거하지 않은 신앙은 오히려 경계해야만 합니다. 전통이라는 고정관념이 자신을 가두고, 단순한 열정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모습들은 특히 조심해야 되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분에 대하여 알고 믿으며 순종하는 자세로 서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