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명하신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세 가지 시제로 구분하여 기록하라는 지시입니다. 즉, “네가 본 것”, “지금 있는 일”, “장차 될 일” 이 세 표현은 각각 요한이 보았던 환상의 시점과 내용을 구조적으로 구분하며 계시의 전개를 설명해 주는 기준이 됩니다.
‘네 본 것’이란 사도 요한이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것, 곧 요한계시록 1장에서 나타난 환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광 중에 나타나신 인자 같은 이, 곧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계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1장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드신 장엄한 모습을 보았고, 그 주님께서 교회를 향한 권위와 심판의 주로 서 계신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이것은 과거 시점의 계시이며, 재림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제 있는 일’이란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 곧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가리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단지 과거의 일곱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지상 교회들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신앙의 문제와 상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지금 있는 일’은 단순히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존재할 교회의 영적 상황을 반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장차 될 일’이란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 전개되는 미래적 계시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요한이 계시를 받던 당시에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건들로, 세상 끝날까지 일어날 모든 종말적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어린양의 인을 떼시는 장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장면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 내용들은 단지 먼 미래의 예언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의 시간으로서, 종말론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사건들입니다.
이 세 구분은 단순한 시간의 나열이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인간적인 시간 구조로만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정하신 구속사의 계획 아래에서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계시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하나하나 실현되어 갈 사건들로,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니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의 말씀을 대할 때에도 그분의 섭리와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은 단지 요한에게 주어진 계시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과거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현재 우리의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장차 반드시 오실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깨어 있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요한이 기록한 이 계시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주님의 재림과 완전한 승리를 소망하는 믿음의 길을 끝까지 견고히 걸어가시는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