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것(마태복음5:20)

조회 수 3219 추천 수 0 2010.06.07 19:04:4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義)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어떤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바리새인의 신앙보다 더 나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완전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들은 하늘의 왕국(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보다 나은 것을 선택한 자만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성경에 기록된 것을 단순히 행하는 것으로 그들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기도하고,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성가대를 하고, 봉사와 구제하는 일을 하는 것 등으로 자신의 구원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안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결코 바리새인들이 지키는 율법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나은 것입니까?

1. 표적과 은혜

바리새인들의 특징은 모든 것들을 외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들은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또한 자신들조차도 드러내기를 위해 힘을 기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언제나 권위 있는 자리에 앉고 싶어 하고 존경 받는 자리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들이여! 이는 너희가 회당의 윗자리와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눅11:43)

이러한 자들이 예수님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표적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던 자였지만 여전히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증거는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속해서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사두개인들과 함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줄 것을 요구하니(마16:1)

바리새인들이 나아와 그분과 논쟁을 시작하며 그분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막8:11)

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교회 안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표적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병이 낫기를 구하고, 부자가 되기를 원하며, 명예와 권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자신의 출세를 위한 훌륭한 도구이며, 주님은 당연히 자신의 바램을 이루어 주셔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과는 매우 반대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주지 아니하리라(마12:39)

표적을 구하는 자들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특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상 오늘날 이러한 현상들이 곳곳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바로 지금 이 세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마16:4,눅11:29). 그것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 그리고 부활에 관한 것이며, 이것을 성경은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고전15:1-3). 이 세대가 하는 일은 바로 이 복음의 말씀을 믿고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엡2:8,9). 어떠한 대가나 수고를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특별하게 보여 지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너무 쉽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러한 은혜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표적을 원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은혜를 보고 감격하는 자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감격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까?

2. 사람의 교리와 성경의 교리

교리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리(doctrine)라는 말만 들으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교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그것들을 가르치도록 명령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만 합니다(행2:42,행5:28,롬6:17,롬16:17,고전14:6,고전14:26,엡4:14,딤전1:10,딤전1:11,딤전4:6,딤전4:13,딤전4:16,딤전5:17,딤전6:1,딤전6:3,딤후3:10,딤후3:16,딤후4:2,딤후4:3,딛1:9,딛2:1,딛2:7,딛2:10,히6:1,히6:2,요이1:9,요이1:10,계2:24).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리들에 결코 건전하고 가르칠만한 교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다양한 교리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다른 교리(딤전1:3), 마귀들의 교리(딤전4:1), 이상한 교리(히13:9), 이단 교리(벧후2:1), 발람의 교리(계2:14), 니골라당의 교리(계2:15)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이 교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교리를 누룩으로 표현하고 계신데, 그것은 곧 사람들의 명령들을 따라 가르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시매(마16:6)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사악한 교리의 특징은 바로 사람들의 명령을 따라 만들어 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교리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을 따라 만들어진 교리들은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빈, 웨슬레, 알미니우스, 루터 등 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쫓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들의 이름을 빌어 교리를 만들어 냄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의 경배를 헛된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빵에 관한 것이 아니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함인 줄을 어찌하여 너희가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그분께서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명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16:11,12)

예수님께서 교리의 누룩을 경계하고 게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택한 교리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음이라.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저것도 행하지 않은 채 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마23:23)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의 본질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 안에서 그들이 지켜야 할 규례들에는 그토록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주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규례들을 만들기도 하고, 그 틀 안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스스로 만족하는 어리석은 모습들을 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어떠한 규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유일한 교리를 세워주며, 그것은 공의와 긍휼과 믿음을 통하여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들의 교리를 따라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바들을 따라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깨달음을 주시는 대로 행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성경의 교리를 따라 가십시오. 그것은 가장 안전한 것이며, 우리가 안전하게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눈먼 지도자와 참된 지도자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주저 없이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말하겠습니다. 바른 복음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복음은 눈 먼 지도자들에게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의 왕국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아니하며 들어가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마23:13)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바른 행위를 통하여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들이었지만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하늘의 왕국(천국)을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눈 먼 지도자들입니다(마15:14). 그들을 만난다면 그는 결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의 열심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개종자(改宗者)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만들면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기 때문이라(마23:15)

그들은 개종자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다니다가 만들면 자신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열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있고, 하나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언제나 바른 것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것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 된 지도자입니다. 누가 참된 지도자입니까? 언제나 양된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기에 힘쓰는 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요21:15-17,행20:28,고전3:2,벧전5:2). 우리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겸손함으로 섬기고 그리스도인 된 양떼들을 먹이는데 힘쓰는 지도자를 찾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눈 먼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면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더 나은 지도자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위선과 진실

위선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매우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기도를 오래한다든지(마23:14), 율법을 잘 지킨다든지(마23:23), 경건하게 보이도록 행동한다든지(눅18:11,눅11:42) 하는 것들은 어찌보면 선망의 대상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행동들은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선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겉과 속이 다른 상태를 가르쳐 위선이라고 합니다(마23:25,23:26,27,눅11:39). 그것은 회칠한 무덤과 비교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덤은 겉은 매우 깔끔하고 잘 정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시체가 썩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도 겉으로는 매우 경건하고 훌륭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은 시체와 같이 죽어서 사악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의 사람을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 대하여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동안에 무수한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비로소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먼저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눅12:1)

위선은 누룩과도 같은 것입니다. 만일 위선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면 그도 곧 위선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위선적인 지도자 밑에서 성경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도 위선자로서 양육을 받게 될 것이며, 결국 치유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룩이 이미 퍼져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제거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누룩이 우리의 마음에 침투가 된다면 우리는 자칫 치유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룩, 즉 위선이 우리의 마음 안으로 침투할 수 없도록 경계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선이 아닌 더 나은 것을 추구함에 있어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진실입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겉과 속이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매사에 정직한 것입니다. 위선적인 바리새인이 기도를 오래하며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기도와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응답하실 것입니다. 위선자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주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구원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죄인임을 고백하고 진실한 자가 구원에 이를 수 잇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이 더 나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실해지기를 위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위선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5. 전통과 진리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전통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전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교회를 본다면 아마도 카톨릭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전통을 성경의 권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카톨릭 교회만이 아니라 기독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성경과 전통을 같은 위치에 둠으로서 모든 성경 해석들을 전통에 기준을 두고 풀어가는 모습들을 보기도 합니다.

이는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손을 자주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막7:3)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묻되,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대로 걷지 아니하고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나이까? 하니(막7:5)

성경에서 전통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전통대로 하기 않는다고 꾸짖기까지 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통을 따르고 있었던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만일 성경의 진리들을 무시하고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의 많은 전통들이 성경을 근거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성경이 아닌 것들을 마구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이교도들의 전통까지도 교회 안에서 활개를 치는 경우들을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해거리 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분은 분명히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대화를 하는 대상들은 죄인들이었으며, 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에수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먹는다, 하더라(눅15:2)

전통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길들여진 습관을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의 많은 전통들은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전통보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에 더 나은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안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말씀의 거절과 영접

성경을 어떠한 자세로 대하는가? 하는 것은 구원과 관련한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것에 대하여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가 학자라면 의심을 품는 것으로부터 연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학자로서 성경을 대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록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영접하기를 원하고, 또한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 중에서 몇 사람을 그분께 보내매(막12:13)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그에게서 침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하더라(눅7:30)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책잡으려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계획을 거절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하는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절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하여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더 나은 것을 구하는 자라면 영접하는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영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사람의 지식으로 깨달아 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말씀이 우리 안에서 머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접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마음에 의심을 품고 거절하는 자세를 가진 자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7. 더 나은 것

바울도 자신이 바리새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빌3:5). 그러나 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율법에 따라 살았던 모든 것들에 대하여 배설물(dung)과 같이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빌3:8). 그는 더 나은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바울의 과거 모습은 매우 화려하고 권위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먼저 버리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관습, 지식들, 그리고 위선적인 행동들은 우리의 구원을 방해 할 것이며, 혹시 구원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의 믿음은 성장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더 나은 것을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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