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11:28)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불려졌던 침례 요한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인 침례 요한의 모습조차도 사랑하시고 칭찬하시며 안심시키며 메시야임을 알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문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참 쉼을 주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참 모습을 대하면서 회개치 않는 인간들의 갖가지 교만한 모습 속에서 우리의 영혼 속에 숨겨져 있는 죄악의 씨앗들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 침례 요한을 칭찬하신 예수님(1-19)
1. 예수님의 사역의 방법
(1) 가르치심
교육은 모든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감당해 나가심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을 곳곳을 다니시면서 가장 먼저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가르치시는 일이셨던 것입니다. 매사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가르치시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으셨음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병을 고치신 후에도 교훈을 잊지 않으셨고 각종 이적과 기적이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교훈 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등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고, 다만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따랐던 까닭에 훌륭한 하나님나라의 일군이 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가르치는 일에만 익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배우고 가르치는 일들은 계속되어야 하며 이것은 무슨 일에든지 가장 훌륭한 기초일 것입니다.
(2) 전도하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있다면 역시 전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전도의 모범을 직접 보이심으로 전도에 있어서 결코 성역이 없음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돌아다니심으로서 전도가 단순한 말로서 이루어질 수 없고 몸으로서 실천해야함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역자들이 명예만을 내세우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하지만 전도자라는 직분이 명예직이 될 수 없음은 너무 자명한 사실입니다.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로 끌어내려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희생할 수 있는 이가 진정한 전도자, 혹 양을 거느릴 목양자라 일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침례 요한의 회의
(1) 침례 요한이 기다리던 메시야
침례 요한은 옥중에서도 메시야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는 등 불의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항함으로 예수님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메시야 왕국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모든 나라를 제패하고 현실의 어려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옥에서 끌어내기 위한 구명 운동을 벌이는 등 정치적, 시대적 메시야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까닭에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는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메시야인지 알아보기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2) 정상적 메시야 관
침례 요한이 생각했던 메시야관은 극히 현실주의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직 복음만으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셨고, 성령과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릇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결코 눈에 보이는 메시야의 능력을 바라보는 것, 혹은 정치적, 시대적 메시야로서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면 이러한 메시야관을 바로잡아야만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모보다는 내면의 구원을 더욱 바라시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극히 영적인 자유와 해방,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3) 침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갈대와도 같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시류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에 있었고, 각종 사치스런 생활을 일삼으며 살던 대언자가 없던 시대에 침례 요한이 등장함으로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왔습니다. 더욱이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사치스런 생활을 할 수도 있었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나감으로서 사명인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개인적인 생각에서 잠시 회의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힘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옥중에서 회의를 가지고 있을 때 높이시는 예수님, 바로 이것이 위대한 예수님의 일면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예수님께서 지니신 목자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의 교훈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기점으로 하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교훈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천국에 관한 것으로서 천국이 폭력을 당하며 폭력배들이 그것을 강제로 빼앗는다고 교훈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한의 때로부터 천국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폭력은 멈출 줄을 모르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마귀들의 횡포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파격적인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반응한 사람들을 향해 영적으로 무관심한 세대임을 크게 꾸중하셨는데 영적 문둥병자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의 모습 속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없으면 전혀 무관심, 무반응으로 대처하는 무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의 여부는 행한 일 곧 그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이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더듬으면서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