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분께서 그들의 손에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9:29)
한 직원(회당장)의 모습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모습, 두 소경의 부르짖음과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데려온 무리들의 모습을 통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은 훌륭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살아 있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힘이 믿음에 있음을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치유하시는 것은 육신의 병만이 아닌 정신적 질병, 곧 영혼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든 인간들의 육신보다는 영혼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발견하게 되면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코자 하는 자들에게는 영혼 중심의 사역을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색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지금 주님의 능력에 의한다기보다도 오직 그들의 믿음으로 해결 받는 그들의 모습과 함께 우리의 믿음의 사역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8-26)
1. 죽은 자를 살리는 믿음을 가진 회당장
한 직원(회당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내 딸이 지금 막 죽었사오나 내 딸에게 안수하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함으로서 그에게 있어서 획기적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엄청난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섰던 것입니다. 당시 회당장이라 함은 회당 중심을 이루고 있는 유대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오늘날의 목사와도 같은 유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와 체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이미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의 겸손함을 칭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가 자신의 문제가 아닌 딸의 문제로 나아온 것은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 믿음은 결국 죽은 자를 살리게 하는 엄청난 역사를 동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심에 있어서도 자신을 미워하는 유대 지도자라는 편견을 가지시지 않고 오히려 그를 도우시고자 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대하면서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자들의 마음 자세를 가르쳐 주심을 알 수 있고, 훤화하는 무리들을 내어쫓으시는 모습을 통해서는 말씀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믿음 역사의 환경을 만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루는 자들은 긍정적 삶의 태도와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생활의 모습을 가져야만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신 부분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도사리는 사망 권세를 몰아내고 그리스도를 향한 진정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있을 때 우리 역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겉옷만 만져도 낫겠다는 여인의 믿음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이 여인은 하혈증세로 인하여 육체적으로 불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왔고, 사회적으로는 죄인으로 낙인찍힌 상태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함께 겪어와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소외된 배경 속에서 그가 예수님에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믿음과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결국 여인의 자기 극복을 통해 여인은 예수님의 곁 옷을 만지는 믿음의 행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12년 동안의 투병 생활을 통해 그녀의 외모가 추하고 볼품 없으나 깨끗한 믿음을 가졌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녀는 장기간의 투병 생활로 인하여 재산을 탕진 당했고 그 까닭에 가족으로부터도 혹은 이웃으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다정스레 그녀를 안심시키시며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사회 속의 냉대를 의식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여인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행위 그 자체보다 믿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치유하심에 있어서도 내적 치료 곧 영혼 구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좇았습니다. 그리고 손과 옷을 만지고 심지어 발에 입을 맞추는 자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가진 최상의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따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 받고 칭찬 받을 자는 물질을 많이 드리는 것도 아니요, 높은 직분을 가진 자도 아니요, 오직 믿음을 가진 자만이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나는 진정한 믿음을 지니기 위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깊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삶에 도전해 보기를 바랍니다.
* 너의 믿음대로 되라(27-31)
두 소경이 예수님께 나아오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는 모습 속에는 인생에 대한 절규가 숨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더욱이 그들이 고백했던 말의 내용 속에서는 메시야, 곧 구속자로서의 예수님을 믿고 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눈을 뜨기를 원한다고 함으로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부르짖었음을 생각할 때 진정한 기도자의 모범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심에 있어서 "너의 믿음대로 되라"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믿음의 분량대로 기도의 응답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과연 믿음의 분량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을까? 지금의 우리가 절규하는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혼의 두 눈이 감겨져 있는, 혹 흐려져 있는 상태를 벗어나 맑은 영적 세계를 맛보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내어 던져 버리고 간절히 간구하는 생활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32-38)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게 되자 무리들 가운데 바리새인들은 이를 시기와 질시의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을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1) 예수님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로 보았다는 점과 (2) 성령 역사를 사탄 역사로 평가하고 (3) 배우려 하지 않는 우매한 모습과 (4) 백성들의 시대 문제를 힘없는 권위로만 일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예수님의 복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은 바리새인들이 교회에서 장악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영적 권위로만 일관하고 소외된 자들을 멸시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들을 우리의 내면에서 제거해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특히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두루 다니시면서 사역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백성들의 모든 고통에 동참하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바라보시면서 항상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 하는, 곧 내면이 병든 자들의 마음에 대해 불쌍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된 우리는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모든 인간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또한 사랑의 모습을 가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무리들을 향해 일군이 없음을 한탄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일꾼 된 자로서 사명을 다하고 새로운 일꾼을 계속해서 양성할 수 있는 교회를 형성해 나가기를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주님은 믿음으로서 우리를 구원코자 하십니다. 더욱이 믿음의 분량대로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육신의 모습이 아무리 추한 모습을 지녔다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내면 곧 영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태도는 주님에 대해서 때로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때로는 겉 옷 가를 만져도 곧 아는 지식은 없지만 자위적인 큰 믿음으로, 때로는 부르짖음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 나아갈 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함을 인식하며 우리가 섬기는 교회 안에서 추수할 일군을 보다 많이 양성하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