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흠정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이 두 구절의 비교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관하여 매우 의미 있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개역)은 오늘날 복음주의를 자처하고 있는 많은 이단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또한 흠정역은 그들이 지금까지 가르쳐 온 것들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바른 성경인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담겨져 있는 구절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방을 순회하면서 매우 신실한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는 진리를 아는데 관심이 많았고, 또한 주님을 위해 살고자 힘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보면서 여전히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원의 안전함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성경 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면서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성경을 바꾸라는 말 외에는 어떠한 답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대표적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을 속인 죄로 베드로 앞에서 즉사를 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문은 남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는 아니었지만 일부의 재산을 주님 앞에 드리는 헌신을 보인자입니다. 문제는 그가 즉사한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즉 성령을 속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과연 구원을 받을 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감히 없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여전히 성령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죄에 대한 대가는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합당하지 못하게 주의 만찬을 먹고 마시는 자들에 대하여 정죄를 먹고 마신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고전11:27-29). 그 결과로 그들은 약해지고 병들었으며, 잠자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1:30). 이들은 구원받은 자들입니까? 예!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이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는 것에 대하여 마냥 바라만 보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들이 죄를 짓기 원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의 변개를 시도했던 자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라는 구절을 삭제함으로서 마치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죄를 지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두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성령의 인도를 거절하고 육신을 따라 살면서 죄를 지었을 때 그에 대한 대가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혼의 구원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신실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