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롬9:14-18)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바울은 앞서 이삭과 야곱의 선택에 대한 상황에 대하여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음을 전제하고 먼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4) 이 상황은 자칫 매우 불공평하게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 선 상황들이 이미 약속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이 결코 일방적이거나 공의롭지 못한 결과가 아니었음을 이미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모세의 때를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강조하여 설명합니다.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기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 판을 깨뜨렸지만 자신의 백성을 사랑했으므로 살려주시기를 구했고, 결국 하나님의 긍휼로 백성들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두 번째 십계명 돌 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긍휼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지만 바울은 이것이 불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법적인 차원에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통치지의 주권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와 긍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법적 기준을 두고 옳고 그름에 대하여 말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 주어진 법은 그들 사이의 약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까닭에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지켜진 규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와 조직은 엄청난 혼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 그들만의 법을 두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 즉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혼란이 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모두 말씀에 근거하여 상을 받게 될 것이고, 또한 저주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의 결과들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즉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야고보의 경고를 보십시오. 그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약4:11)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방하고 판단한다면 그의 행위는 곧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요8:15)고 말씀합니다. 심판의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완악한자 바로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친히 세우셨음을 강조하여 설명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곧 바울이 성경이 일반적인 기록이 아니라 그것이 살아있는 책,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바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17)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는 출애굽기9장16절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공의로우심을 보이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긍휼하심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