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로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처음부터 복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유대인들에 의해 거부를 당했고, 이방인들의 많은 지역에서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핍박의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복음이 이 땅에서 누리게 될 형통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주는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있습니다. 그 까닭에 이 땅에서 당하는 모욕과 수치, 그리고 환난과 핍박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믿는 대상들을 소개하면서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다음은 이방인, 즉 헬라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결코 유대인의 우월성과 우선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의 존재 자체를 특별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주목해야 할 대상이 유대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최소한 주님은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는 이 내용은 복음이 전해져가는 순서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물론 그들은 거부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제자들은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도 복음은 전해졌고,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여셔서 고넬료의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지역 전역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복음은 결코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원칙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하박국 2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조건은 다름 아닌 “믿음”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행위를 통한 구원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 선한 행위의 분량만큼 구원으로 보상해 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행위가 분량을 넘어서면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한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의 성도들에게도 분명하게 가르친 바가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구원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구원에 대하여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영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by faith from first to last"(NIV) 즉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아니고는 복음이 설명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 봉사, 전도 등 종교적 행위를 하다보면 믿음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매우 잘 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든 행위들이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철저히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믿음으로 마칠 수 있는 생애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복음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