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주)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27)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는 바알과 아세라를 무너뜨리고 쪼개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과 전혀 조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고후6:15)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각종 이교적인 관습들과 율법적인 행위들을 말할 수 있겠고, 내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돈, 명예, 권세, 세상 지식 등....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무너지고, 파괴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비겁해 보이는 기드온의 행동입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말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모든 일에 대해 조용하게 넘어가려는 기드온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속성은 늘 존재합니다. 성품이 직설적이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문제에 대해 조용하게 넘어가려 할 것입니다. 특히 신앙적으로 많은 부딪힘이 예상될 때 그들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격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드온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무너뜨렸듯이 우리도 우리의 안과 밖으로 존재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혹은 비겁한 사람이라고 주님이 쓰시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주님은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욱 불순종하고, 비겁하며, 소극적이기까지 한 기드온도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했느냐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이든지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