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사고방식

조회 수 2040 추천 수 0 2010.06.05 14:49:21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골로새서2:8)

이 나라의 교회가 가장 보편적으로 허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면 역시 은사주의, 혹은 신비주의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기보다는 병 고침을 받고, 가정과 사업, 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미 교회 안에서 복음보다는 신비스러운 일들을 통해 교회로 사람들을 모으는 일들을 계속해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적극적 사고 방식은 사실상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지 오래된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고가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경로를 생각한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매우 사탄적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근거를 대며 이 사고를 변호하려 하겠지만 그것들은 매우 터무니없고 복음을 약화시키려는 사탄의 술수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뉴에이지 운동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이 최근 수 십 년 사이에 있어 온 운동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어 온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니 여자가 본 즉 그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이므로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으니라 이에 두 사람이 눈이 열려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치마를 만들었더라(창세기3:4-7)

인류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이브가 뱀의 꾐에 빠진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후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의 결과가 가져오는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멈추지를 않았으며, 그들은 종교라는 형태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가지는 공통점은 바로 뉴에이지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종교가 말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데 있어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겠다는 의지가 종교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 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의 성품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영적, 사회적, 정치적인 것과 사회학, 신학, 과학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이 뉴에이지 사상도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하나(All is one)라는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은 신(All is God)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모든 인간은 신(Everyone is God)이라는 사상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신과 같은 존재로 가르칩니다.

이러한 사상이 위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행위를 매우 싫어하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이 되고자 노력해 왔으며, 또한 신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도 구약시대의 왕들은 대부분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들은 결국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입니다.

이에 헤롯이 한 날을 정하여 왕복을 차려 입고 자기 왕좌에 앉아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니 백성이 환호하며 이르되 이것은 신의 음성이요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천사가 곧 그를 치매 그가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두니라(사도행전12:21-23)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진리를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고린도전서2:18) 그들은 사람 안에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펼치는 것은 "계몽운동"입니다. 그들은 언론이나 각종 전파 매체를 통하여 도덕적인 생활을 하도록 말하며, 집단적으로 수행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뉴에이지 운동이 보편적인 것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의 뿌리 뉴에이지 운동

뉴에이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잠재력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명상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능력은 한계가 없으며 어떤 불가능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은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숨겨진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서 그들의 사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해 가려고 했습니다. 특히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각종 수련회나 연수 등을 통해서 확실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상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교회 안으로 들여 온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의 크리스탈 교회로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적극적 사고 방식을 도입한 목사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적극적 사고 방식을 주장한 목사의 대표적인 사람이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적극적 사고 방식은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 가르쳐 온 내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열등감을 가지고 살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 삼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 목사가 주장한 것은 내용을 달리합니다.

그는 가능성 있는 사고를 주장합니다. 이 말은 어떤 것이든 간에 무엇인가를 상상하게 된다면 그것이 결국에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하는데 그가 크리스탈 교회를 상상하게 되었을 때, 그 교회는 건축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디에도 상상을 하면 이루어진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의 모든 뜻과 생각을 주님께 맡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은 이러한 사고에 기초를 두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결코 희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오직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I can do"(나는 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용어가 된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교회의 역할은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워가며 물질과 명예, 그리고 권세까지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사상 덕분에 거대한 집단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들은 지금 주님께서 숫자와 부요함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잊고 교회의 역할을 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적극적 사고방식은 그들을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정도로 교회를 변질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뉴에이지 운동

뉴에이지 사상을 받아 교회 안에 적용하기 시작한 신학의 대표적인 경우가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을 심기 시작했고, 회개나 거듭남이 없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침으로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도 구원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며, 복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성숙해 질 수 있으며 그들은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을 심기 시작했고, 회개나 거듭남이 없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침으로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도 구원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며, 복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성숙해 질 수 있으며 구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그들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신비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이미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고 떠나려 하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복음과는 전혀 관계없이 사회 구원을 외칩니다. 그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선한 행실이 구원을 보장 해 줄 것처럼 가르침으로 잘 못 된 길로 인도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 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교리보다, 심지어 이단적인 교회의 사상보다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그 증거로 많은 교회들이 복음적인 교회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상 교회 안에 구원 받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들은 능력 있는 생애를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런 보상도 얻을 수 없는 헛된 일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실상 이 시대는 뉴에이지 운동이 극에 달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리학의 대표격인 프로이드는 종교가 해로운 것쯤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 발전해서 실험 심리학 시대에는 종교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쯤으로 가르쳐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인간 자체, 즉 인간의 잠재력에 초점을 두고 그들의 잠재력을 계발하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언론이나 방송 등을 통하여 홍수와 같이 사람들에게 쏟아 부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교회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 교제하고,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며,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의 잠재력을 시험하기도 하며, 무언가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매우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사실상 교회는 뉴에이지 사상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이미 증거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슬피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결박 당하는 것뿐 아니라 죽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노라 하니(사도행전21:13)
바울은 오히려 형통한 삶을 살기보다는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던 전도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가난하고 집 한 칸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사회 계몽을 위해 힘쓰지도 않았으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고쳐 줄 것을 구하다가 고쳐주시지 않음을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계시가 넘침으로 말미암아 분량 이상으로 높임을 받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는 나로 하여금 분량 이상으로 높임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도록 주께 세 번 간청하였더니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강한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하여짐이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12:7-9)

과연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할 만한 존재들일까요? 만일 우리가 그러한 존재일지라도 성경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당연히 자신을 십자가와 더불어 장사를 지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내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임이라 (빌립보서1:20,21)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 안에 속해 있으며, 그 분께서 주시는 것들을 받아서 하늘의 보상을 바라고 하루하루를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안에 있는 잠재력을 계발하고자 한다면 주님은 우리 안에서 더 이상 머물러 계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뉴에이지 사상이 교회 안에 침투해 오면서 가져 온 적극적 사고와 인본주의적인 사고를 털어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며, 삶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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