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협력자

조회 수 1670 추천 수 0 2010.06.06 07:40:28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꿈 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에 있어서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공의 기준을 말한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역의 효과는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역을 함에 있어서 환희와 좌절을 모두 겪었던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테네에서의 사역을 통해서 많은 노력과 정열을 쏟아 부었지만 그는 실망을 하고 그 도시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아테네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로 만일 아테네가 복음화 된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기대하고 열심히 증거를 하였지만 그는 몇 명의 사람들만을 얻었을 뿐이었습니다(행17:34). 그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함에 대하여 실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의 아쉬운 사역을 뒤로하고 고린도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놀라운 사역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귀중한 협력자를 얻게 되었으며, 후에는 초대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사역을 하는 중심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또한 협력자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고린도에서의 만남

이 일들 후에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본도에서 태어난 아굴라라 하는 유대인을 만나니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에게 명령하여 로마를 떠나라 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왔더라. 바울이 그들에게로 가서 생업(生業)이 같으므로 그들과 함께 머물며 일하니 그들은 직업으로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더라(행18:1-3)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 이른 것은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떠나도록 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굴라 부부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울과 만나는 장면은 매우 흥미롭게 합니다. 그들 부부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사역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직업을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른 도시에서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지만 유독 고린도에서 만큼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추측하기를 아테네에서의 사역에서 모든 비용들을 탕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이 직업을 통하여 아굴라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협력자를 얻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만 좋은 일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바울은 통해 보는 것과 같이 같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과정에서도 좋은 협력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협력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자신들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자였지만 결코 그가 말하는 복음을 들을 줄 알았고, 후에는 바울을 돕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현재 일하는 일터는 바로 사역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곳은 어느 곳보다도 훌륭한 사역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 들어 와야만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또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이미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가지고 또 다시 구원에 관하여 말할 수 없으며, 좋은 협력자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장소로부터 좋은 협력자를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신앙의 모습보다는 먼저 그의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땀 흘리는 모습을 통하여 다가 올 것이며, 그 가운데 전하는 복음은 그들의 마음 안에 심겨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교회 안에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 밖을 나가면 사람들을 속이고, 남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복음을 가로막는 자들입니다.

2. 바울과 동행하는 아굴라 부부

이 일 후에도 바울은 거기서 꽤 오래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거기서 배타고 시리아로 들어가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와 함께하니라. 바울이 전에 서원한 것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행18:18)

바울이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들어 갈 때에 아굴라 부부는 함께 동행합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동업자의 관계를 벗어나 동역자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처음 만남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했던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서로를 돕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는 이미 주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바울과 동행함으로 결실을 얻고자 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세상에서의 소망을 뒤로 하고 오직 주를 위해 살기로 결정을 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과감히 자신들이 가진 터전을 뒤로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결심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적으로 분리되는 또 다른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안주하는 삶은 결코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모셔 들인 아굴라 부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한 변화를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 변화를 맛 본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삶에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에는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분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 생활의 변화도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는 그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 바울과의 만남을 통하여 복음에 대하여 들었지만 그들은 이미 주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협력자가 되기 이전에 분명한 변화를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변화된 사람만이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을 가르침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이 사람이 전에 {주}의 길을 배워 영이 뜨겁고 {주}에 관한 것들을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더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풀어 설명해 주니라(행18:24-26)

우리는 아굴라 부부를 통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던 아볼로라는 사람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풀어주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굴라 부부가 처음부터 성경적으로 특별한 사람들이었다는 증거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오히려 당대에 유면했던 성경교사인 아볼로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협력자가 되는 또 하나의 조건으로 성경을 아는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울을 통하여 진리를 아는 지식을 분명하고도 확신 있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느덧 선생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이 사역자를 돕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처음에는 사역자를 잘 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사역을 방해하는 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진리를 알고 협력하면 서로가 하나가 되어 보다 능력있는 사역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는 바나 진리의 내용을 서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큰 싸움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굴라 부부는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서 바울을 충분하게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에게 있어서도 매우 큰 힘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아굴라 부부에 대하여 고린도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보내면서 사역을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역의 협력자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성경을 알기 위해서 힘써야만 합니다. 현대인들은 성경 지식을 대신하여, 물질과 헌신만을 가지고 사역을 대신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사역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분쟁과 분열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가 협력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작정되었다면 성경을 알기 위해서 힘써야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사역자가 아니기 때문에 많이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역자이든 아니면 말씀을 듣는 성도이든 누구든지 성경을 알기 위해서 힘썼을 때에 모두에게 능력 있는 사역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십시오.

4. 바울의 협력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인사하라 그들은 내 생명을 위하여 자기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모든 교회들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바울은 공식적으로 아굴라 부부를 자신의 협력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아굴라 부부에게 있어서도 매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부부가 바울의 사역에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더욱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바울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을 내놓았다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바울을 위하여 죽기까지 작정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일 오늘날 이러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굴라 부부를 포함한 바울의 무리들은 이단이라고 낙인찍을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의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주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단들과 아굴라 부부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목숨을 내놓은 동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의 무리들은 사람을 추종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주에 대하여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그들의 지도력에 대하여 굴복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릴 마음이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아굴라 부부가 목숨을 버리기까지 바울을 사랑하는 것은 복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바울의 존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자신들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사랑하고 심지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과연 그것이 복음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오는 것이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복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진정한 협력자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은 분쟁과 분열의 원인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추종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복음만을 생각하고, 그 말씀만을 따라 살기로 한다면 결코 분쟁이나 분열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서 사역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은 결코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더욱 존경 하고 사랑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 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 힘쓰십시오. 주님은 그로 인하여 더욱 사랑하실 것입니다.

5. 자기 집에 있는 교회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자기 집에 있는 교회와 함께 {주} 안에서 너희에게 많이 문안하느니라(고전16:19)

현대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초대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교회가 아닌 가정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골4:15,몬1:2). 바로 아굴라 부부 역시 그의 집에 교회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당시 종교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여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정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사역의 효과를 증대시켜 줍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가정생활과 교회 생활을 구분 지으려 하는 모습들은 보입니다. 그들은 교회당에 와서는 매우 열심히 섬기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정에서는 전혀 믿음과 관계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만 믿음의 생활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대부분의 가정이 가족 모두가 함께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가정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당시에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가정교회의 형태를 이룰 수 있었겠지만 아굴라의 가정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부부가 모두 주님 앞에 헌신된 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교회라는 단위를 매우 크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교회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더 이상 모이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생겼을 때에는 또 다른 가정에서 모임을 갖는 형태가 되는 것은 사실상 가장 성경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추구했던 방법입니다.

가정은 자체 내에서 헌금을 모아 두어서 다른 사역자를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아굴라의 가정과 같이 직접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도시로 다니면서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효과적이고도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굴라의 가정을 보면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협력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협력자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적으로 좋은 것만을 취하고 만일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역자를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오늘날 아굴라의 가정과 같은 협력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협력자 인지 아니면 영적 이기주의자는 아닌지를 돌아보고 주님 앞에 정직하고 합당한 자세로 믿음의 생활을 해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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