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웰빙

조회 수 1712 추천 수 0 2010.06.05 23:36:22

웰빙이라는 용어가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이 고도화된 첨단 문명에 대항하여 자연주의와 뉴에이지를 받아들이면서 파생된 단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비교적 부유한 국가에서 유행되어지고 있으며, 단순히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을 넘어 평안과 안정을 통한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웰빙의 열기는 오늘날 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인에게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웰빙의 시작과 사회적인 영향이 결코 건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미 악용되어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결코 긍정적인 입장에서만 볼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은 웰빙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웰빙, 즉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건강과 물질적인 풍요함, 그리고 명예를 얻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의 잣대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간증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생활의 변화를 통하여 복을 얻게 되었는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추구가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나은 삶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누구보다도 웰빙의 삶을 추구했고, 또한 이루었던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풍요로운 삶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어서 성경은 매우 인색합니다. 심지어 솔로몬 자신도 자신이 헛된 인생을 살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하여 오늘날 웰빙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이 얼마나 헛된 일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칫 인생을 아무런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정신적 수양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아무리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있게 되는 것이며, 영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웰빙의 삶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 안에서 웰빙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가 웰빙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한 삶을 택했고,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때로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했고, 결국에는 그의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사형(구전에 의하면 참수형)을 당해 죽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참된 웰빙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 말했을 만큼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전혀 후회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웰빙을 추구하는 삶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살는 것, 또는 세상에서 염려나 근심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바울은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에서 비춰볼 때 사도 바울은 결코 불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의 인생을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웰빙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언제나 다가 올 세상, 즉 천국에 있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곧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그는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가진 명예, 권세, 지식과 같이 세상에서 부러워할 만하고 모든 이들이 얻기 원하는 것들에 대하여 배설물(dung)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버리는 차원을 넘어서 더럽고 추한 것으로 여기고 다시는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의 부러워할 만한 것으로 자신을 채우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더 이상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다가 올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던 이유는 그가 장차 받을 상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래가 그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오히려 그의 가는 길에 장애가 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고 오히려 세상에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삶을 살기 위해 힘썼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사도 바울을 통해 얻는 웰빙의 삶을 위한 지혜는 곧 버리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주의와 뉴에이지 사상가들이 웰빙의 삶을 살고자 했던 이유도 이 세상이 더 이상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들도 명상이나 요가를 통하여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들을 통하여 육신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들을 채웁니다. 이 사실만을 근거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비교한다면 매우 비슷한 모양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스스로를 위안삼거나 만족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믿음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얻은 구원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부담스러워 하며, 오히려 그것들을 나누어 주면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고 또한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마지막 제안으로는 나눔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바라보면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날마다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나누면서 한 마음으로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행2:44-47). 어떻게 이러한 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나은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구했던 생활의 원리들은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웰빙을 실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웰빙의 삶을 살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소유를 어디에 두는가에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물질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으로서 웰빙의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했지만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심히 근심하고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포기했던 것과 같이 자신의 소유로 인하여 주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에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쓰는 자라면 자신의 모든 소유가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만일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자신의 가진 것들을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에 기꺼이 드릴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참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웰빙의 삶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웰빙(well-being)의 삶을 추구하지만 그들은 헛된 것들을 따라 사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에게 참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살다가 죽게 될 것이며(히9:27), 다가 올 세상을 통하여 우리의 삶은 결정 될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구하십시오. 그렇다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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