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가르치다보면 방해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 안에서 제거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좋은 열매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성경을 배우는 자세가 바로 잡혀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성경을 배워도 지식을 더 할 수 없는 이유는 성경을 배우기 위한 접근이 잘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이든 한 번 잘 못 들어서게 되면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진리를 바르게 접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바로 배우는 자의 자세가 바로 잡혀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효과적인 성경공부를 위해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1. 고정관념을 버려라

 

고정관념이 성경공부를 방해하는 것 중에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지식들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그들이 목회자들의 신념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에 익숙해지게 되고, 결국 성경보다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성경 안에서 바르게 가르치는 목회자로부터 성경을 배워왔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목회자도 사람이므로 많은 편견과 철학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사도신경“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안에서 예배시간에 암송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성경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의식만을 위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그것이 교회 안에서 암송되어졌고, 교회 안에서 오랜 시간동안 의식으로 지켜져 왔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경적으로 옳은 것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성경의 가르침과는 매우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탄절의 문제만 해도 그 날이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성경을 읽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실제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방해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세뇌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섬기는 교회, 혹은 목회자의 가르침이 전부이며, 혹은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리는 없습니다. 교회나 목회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보다 쉽게 접근하고, 그 속에 담긴 진리들을 스스로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성경 외에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서 신념과 고정관념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는 결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젊은 날 열정과 신념으로 가득차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건져내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쓰실 수 없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왕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울의 눈을 피해 광야에서 생활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훈련이 끝낼 수 있었던 때는 자신의 생각과 열정, 그리고 신념과 같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였습니다. 주님은 자아로 가득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는 어떠한 명령도 자신의 뜻에 맞춰 행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자신 안에서 성경이 해석되고, 자신의 고정관념, 혹은 신념으로 성경을 맞추려 한다면 진리는 그 안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과 같은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말씀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배우기를 갈망하라

 

또 그의 모든 서신에서도 이것들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배우지 못하여 흔들리는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느니라(벧후3:16)

 

앞서 말한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가지고 바르게 양육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은 깨닫기 어려운 것을 스스로 억지로 풀다가 나오게 되는 결과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양육할 수 있는 목양자를 주었습니다.

 

내가 또 내 마음에 맞는 목양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明哲)로 너희를 먹이리라(렘3:15)

 

참 목양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양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유는 지식과 명철로 먹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약 성경 안에서 대언자들이 성경을 읽어주고, 또한 그것들을 가르치는 장면들을 봅니다. 백성들도 성경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를 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르게 지도하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이 내시에게로 달려가서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에게 청하여 올라와 같이 앉으라 하니라(행8:30-31)

 

빌립과 이디오피아 내시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시가 비록 손에 성경을 들고 그것을 읽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먼저 안 자들은 마땅히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하며, 그들을 바르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28)

 

성령님께서는 교회 안에 성도들을 먹이시기 위해서 그들의 목양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당연히 성도들은 그들의 목양자들로부터 나오는 말씀들을 받아먹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강단으로부터 나오는 목양자들의 말씀을 소홀히 대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또한 함부로 비방하고 판단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더 이상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속해서 양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양자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양자들이 자신의 본래 사명은 뒤로하고 보조적인 일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을 봅니다. 가령 예배당 건축이나 사회 사업, 지역 사회 활동과 같은 일들에는 열심을 내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성도들을 먹이는 일에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며, 결국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양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힘써야 하며, 목양자들은 성도들에게 더욱 유익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성경을 탐구하고 또한 연구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주님은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3. 성경은 전통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전통이 성경보다 더욱 권위 있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전통들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지키는 자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교회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전통적인 교단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성경의 입장을 앞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교훈하시면서 독특하게 설명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의 끝머리마다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마12:3,5,19:5,21:16,42,22:31,막2:25,12:11,26,눅6:3). 이 말씀은 단순히 바리새인들에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성경보다는 탈무드를 비롯한 장로들의 유전들을 더욱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에 그들의 행동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비단 바리새인들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바리새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듯이 오늘날 성경보다는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 안에서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보다는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님은 성경보다 전통을 신뢰하는 자들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당연히 전통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가난한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십시오.

 

어떠한 음식이든지 배가 부르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아무리 맛이 없는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으로 무리들을 먹이신 예는 아주 좋은 비유입니다. 본래 보리떡은 매우 맛이 없는 것이지만 이미 사흘을 굶은 무리들은 맛에 관계없이 배불리 먹었습니다(마 15:32-38).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양식이기 때문에 배고픈 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늘 가난하고 배고픈 자가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식탁에 앉아 식사를 기다립니다. 어느 가정이나 먹는 반찬의 종류는 거의 비슷합니다. 5-6가지의 반찬에 밥을 주식으로 해서 먹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찬의 가지 수가 적어서 병이 들거나 영양실조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맛있게 먹고 난 후 건강한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식사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식탁으로 모입니다. 왜냐하면 다 소화가 되었고 다시 양식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우리의 음식 문화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매 주일마다 같은 말씀을 반복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구원, 영접 등 기본적인 메뉴에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더합니다. 성도들은 이 양식을 받아먹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어도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화가 되어서 배가 고파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받아먹습니다. 불평하거나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배가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이 주는 양식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가 불평과 불만으로 채워져 간다면 영적 상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즉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주의 말씀이 갈급한 자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단순히 지식이나 학문이 아닙니다. 영이요 생명으로서 우리에게 들어와 인격으로 자리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자라면 언제나 성경을 묵상하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당신은 말씀을 새로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비대하여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기뻐하나이다(시편119:70)

 

5. 말씀을 마음에 담으라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야말로 양식입니다. 우리는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요1:1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향해 살아있는 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양식이 되신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내가 주고자 하는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고자 하는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요한복음6:51)

 

양식은 어떠한 형태로든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으로 배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위장에 담았을 때에 그것이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양식이 만 하루가 지나가면 우리 안으로부터 배설이 되어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식이 될만한 것은 몸에 흡수가 되고 남은 것들은 밖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 세번씩 양식을 취합니다. 그것을 취하지 않으면 그의 몸은 견딜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먹는 것입니까? 바로 마음으로 받아먹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양식이 계속해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몸의 양식도 거의 소멸되듯이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의 마음 안에서 소화가 되어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속해서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몸의 양식은 사람의 건강을 유지시켜주고 어릴 때에는 성장을 돕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을 때에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또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하게 공급해 주지 못한다면 그는 영양실조에 걸려서 전혀 힘을 쓸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15:7)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이 그의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을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식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말씀을 기초로 바른 것을 구할 것이고, 또한 주님의 일들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그의 모든 길들과 생각들은 하나님께서 매우 만족할 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주님은 그 모든 일들에 대하여 충분하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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