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성경을 읽을 수 있는가?

조회 수 2336 추천 수 0 2010.06.06 08:01:14

어떻게 하면 성경을 많이 읽을 수 있는가? 일년에 일독 이상을 읽으려면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 매년 초가 되면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더욱 많이 성경을 읽게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하고, 독려합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일부 성도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경우를 목격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읽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 일에도 그만한 자격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사람의 말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경을 소설이나, 수필, 시를 읽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한다면 그는 책을 들고 한 시간을 버티기가 힘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읽기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자들은 좀 더 진지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 누가 성경을 읽을 수 있는가?

1) 거듭난 그리스도인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어진 것입니다(딤후3:16). 이 말의 의미는 성경이 단순히 사람들의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을 담은 것으로,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음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처음부터 그 영이 죽은 상태에서 나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지식의 일부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대학 강단에서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성경을 인용하여 가르치기도 하며, 또한 종교의 성격이 매우 다른 불교나 이슬람, 그리고 유교주의자들까지도 성경을 그들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로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자신을 수련하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지식을 더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성경을 손에 들고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조차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었으며, 나중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지만 오히려 성경에 예언된 분이셨던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성경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신학 대학교들이 어떻게 자유주의 신학에 열광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성경대로 산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 사회에 그토록 많은 부조리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도 그들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결코 거듭나지 않은 자가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이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 까닭은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요,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 까닭은 이러한 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2-14)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코 그 안에 영이 살아 있지 않은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입니다. 영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이미 죄로 인해 죽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의 상태, 즉 죽은 상태에서는 결코 영의 일들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남으로 영이 살아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기 전에 먼저 내가 거듭난, 즉 영이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인지를 먼저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정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선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능력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안에서 성경을 읽는자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율법과 만군의 [주]가 이전의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영으로 보낸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고자 하여 자기 마음을 금강석같이 굳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주께로부터 나왔느니라(슥7:12)

성경은 말씀을 듣지 않는 자세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기 마음을 금강석 같이 굳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을 듣는 대상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분류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상태가 구원을 방은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상태는 굳어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굳어 있어서 마치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의 상태라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마13:1-9).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마음을 개간하거 깨뜨려야만 합니다. 단단한 밭에서는 씨를 심을 수 없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개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한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그들의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연한 마음을 주어(겔11:19)

무엇이 마음을 개간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영을 넣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있는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연한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라면 주님으로부터 먼저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갖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말씀이 칼과 비교되어지는 경우를 봅니다(엡6:17). 이것은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과 연관되어 생각한다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칼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수술을 하는 칼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앞에 두고 칼을 마구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또한 군사에 손에 반드시 훈련된 자에 의해 다루어져야만 합니다. 훈련을 충분히 받지 않은 군사는 그 칼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말씀은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에 따라서 효과적으로 쓰여질 수도 있으며, 또한 위험하거나 나쁜 용도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하나님은 그 말씀을 기록하심에 있어서 단순히 책이나 돌판에 기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판에 기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받아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사악한 자는 그것은 악한 용도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선한 자는 물론 선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보존되어 지금까지 왔지만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의 모습들은 다양하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의해서 말씀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활동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 그 자체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말씀은 영원불변하겠지만 마음은 시시각각 변할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정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대하고 또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어떤 자세로 성경을 대해야 하는가?

성경을 읽는 자질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바른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면 그는 성경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령 공부를 하는 학생이 제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어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듯이 제아무리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과 정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실제로 성경을 연구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일에 대하여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자세로 성경을 대하고 그들이 지식을 얻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는 바르게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1) 말씀을 탐구하라

이 혼의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대언한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되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게 될 영광을 미리 증거해 주실 때에 그것들이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탐구하였느니라(벧전1:10,11)

우리는 구약의 대언자들이 그들 자신의 구원이 임할 시기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을 봅니다. 구약 성경 안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또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탐구하라(search).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요5:39)

이 탐구에 관하여는 구약의 대언자들에게만 요구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성경을 탐구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더구나 성경이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자 한다면 당연히 성경을 탐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자 해서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또한 많은 책들과 자료들을 의지해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보조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일 잘못된 책이나 자료, 그리고 거짓 선생을 만나게 된다면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싶고, 또한 이해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성경을 탐구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가장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께서 친히 기록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행17:11)

베레아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던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받아들인 말씀에 대하여 과연 그러한지를 날마다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수없이 많은 설교들을 듣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분주한 일상생활로 인하여 이 설교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는 너무도 많은 거짓 선생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반드시 그것이 성경에서 지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탐구가 우리를 결코 이단이나, 거짓교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아는 지식을 더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study)(딤후2:15)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공부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탐구(search) 이상의 더욱 적극적인 것입니다. 탐구가 받아들인 말씀들에 대하여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공부는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기 원한다면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의 뜻을 분별할 줄 알고, 성경 안에서 진리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성령이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들 스스로가 얼마든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들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성경을 연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경지식에 대하여 아직도 지나치게 의존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가진 지식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어야만 하며, 그러한 생활을 지속한다면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탐구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연구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더해질 것입니다.

2) 배우기를 갈망하라

또 그의 모든 서신에서도 이것들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배우지 못하여 흔들리는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느니라(벧후3:16)

앞서 말한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가지고 바르게 양육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은 깨닫기 어려운 것을 스스로 억지로 풀다가 나오게 되는 결과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양육할 수 있는 목양자를 주었습니다.

내가 또 내 마음에 맞는 목양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明哲)로 너희를 먹이리라(렘3:15)

참 목양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양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유는 지식과 명철로 먹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약 성경 안에서 대언자들이 성경을 읽어주고, 또한 그것들을 가르치는 장면들을 봅니다. 백성들도 성경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를 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전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르게 지도하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이 내시에게로 달려가서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에게 청하여 올라와 같이 앉으라 하니라(행8:30-31)

빌립과 이디오피아 내시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시가 비록 손에 성경을 들고 그것을 읽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먼저 안 자들은 마땅히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하며, 그들을 바르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28)

성령님께서는 교회 안에 성도들을 먹이시기 위해서 그들의 목양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당연히 성도들은 그들의 목양자들로부터 나오는 말씀들을 받아먹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강단으로부터 나오는 목양자들의 말씀을 소홀히 대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또한 함부로 비방하고 판단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더 이상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속해서 양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양자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양자들이 자신의 본래 사명은 뒤로하고 보조적인 일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을 봅니다. 가령 예배당 건축이나 사회 사업, 지역 사회 활동과 같은 일들에는 열심을 내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성도들을 먹이는 일에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며, 결국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양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힘써야 하며, 목양자들은 성도들에게 더욱 유익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성경을 탐구하고 또한 연구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주님은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3) 말씀을 마음에 담으라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야말로 양식입니다. 우리는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요1:1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향해 살아있는 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양식이 되신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내가 주고자 하는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고자 하는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요한복음6:51)

양식은 어떠한 형태로든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으로 배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위장에 담았을 때에 그것이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양식이 만 하루가 지나가면 우리 안으로부터 배설이 되어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식이 될만한 것은 몸에 흡수가 되고 남은 것들은 밖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 세번씩 양식을 취합니다. 그것을 취하지 않으면 그의 몸은 견딜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먹는 것입니까? 바로 마음으로 받아먹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양식이 계속해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몸의 양식도 거의 소멸되듯이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의 마음 안에서 소화가 되어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속해서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몸의 양식은 사람의 건강을 유지시켜주고 어릴 때에는 성장을 돕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을 때에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또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하게 공급해 주지 못한다면 그는 영양실조에 걸려서 전혀 힘을 쓸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15:7)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이 그의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을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식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말씀을 기초로 바른 것을 구할 것이고, 또한 주님의 일들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들을 구할 것입니다. 그의 모든 길들과 생각들은 하나님께서 매우 만족할 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주님은 그 모든 일들에 대하여 충분하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3. 왜 성경을 읽어야만 하는가?

성경은 읽는 것은 분명히 유익한 일입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는 목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약속된 것들과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믿음의 삶을 성경을 통해 제시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실상 성경대로 믿고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많은 핍박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을 행복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현대인들조차도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할 것이라는 말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나의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119:92)

시편은 찬송시로 기록된 것입니다. 시편을 기록한 자들은 말씀에 대하여 기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시1:2,119:35). 심지어 율법(말씀)이 기쁨이 되지 못하였다면 고난 중에 멸망당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의 위로가 되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순간부터 마귀의 표적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시간을 싸워야만 합니다. 세상은 그를 미워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의 상태는 곧 고난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위로와 기쁨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 안에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이는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할 것임이라(수1:8)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하여 언제나 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하여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 성공의 기초는 바로 율법(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자가 결코 성공적인 삶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나으며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도다(잠16:16)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을 알고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기로 작정된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성경을 펼쳐들기를 바랍니다.

2)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위해서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하리라(요7:17)

명령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 순종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우스광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종은 명령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순종하는 생애를 산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주님의 명령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생애를 살고자 한다면 그는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명령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곳에서만이 가장 분명한 명령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의 교회 안에는 많은 성도들이 저마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칭찬을 듣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명령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하고 열심이 있다고 해서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심하기 전의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하나님께로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곧 우리의 순종이 성경을 근거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딛1:6). 그러나 성경의 목적은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들에 대하여 순종하고 더욱 많은 결실들을 얻기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몬1:21).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는 주 사람을 주목하여 사귀지도 말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만일 순종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은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2:8).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큰 목적은 순종하는 삶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는 다 큰 명철(明哲)이 있는 자니 그분을 찬양함이 영원토록 지속되리로다(시111:10)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은 큰 명철이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찬양함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듣기 위해 성경을 읽고 듣는 일에 열중해야 하며,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생애는 성경이 기록된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열심히 그분의 명령을 듣고 행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4. 결론

성경을 얼마나 읽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경을 읽는 것이 즐겁습니까? 그리고 성경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에 담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보다 경건한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명령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디 성공적인 생애와 또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위해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생애를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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