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16~20)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열매는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먼저 그것이 어떠한 나무인지, 또한 그 나무가 어디에 심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마음에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으며, 또한 그 이후에 삶 속에서 어떠한 것을 공급받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은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접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천국에 다다를 수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고정관념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도 이 문제들에 대하여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경을 삶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분께서 어떻게 오실지에 관하여도 너무나 소상히 알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맺은 열매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데 동조하였고, 30년 동안의 생애를 살아가시는 동안 아무런 관심도 갖지 못했으며, 심지어 사역의 기간 중에 일부는 예수님을 따르기도 했지만 백성의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더불어 죽이기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보였던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나다나엘의 반응은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라고 말합니다. 즉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분이 그렇게 등장하실 리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눈앞에 화려하게 등장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없었으며,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제 아무리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그들의 눈앞에 증명해 보여도 그들은 결국 지옥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고정관념이 주는 위험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대부분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을 받을 것을 믿고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그들의 행동은 결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누가 가장 큰 자인가?”(9:34,18:1)하고 논쟁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물론 그들이 천국(the kingdom of heaven)에서 누가 큰 자인지를 논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바로 이 땅에 세워질 다윗의 왕국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시게 될 것이며, 자신들은 그 아래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그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당하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26:15),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26:74),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갈보리 산으로부터 모두 도망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만 생각해서 사형수의 모습이었던 예수님을 차마 볼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토록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다시 일어나리라”(16:21,17:23,20:19,9:31,9:22,13:32,13:32,18:33)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생각했지만 죽으시고 부활하실 예수님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고정관념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들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힘을 기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같이 때로는 굶주리며, 때로는 모진 핍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결코 천국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좌절하고 낙심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좋은 씨앗을 마음에 뿌려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고정관념이 아니라 성경 안에 담겨있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훌륭한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처음부터 대단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생애를 돌아보면 오히려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본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유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탁월함은 결코 좋은 결실을 맺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일들을 지체시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객관적으로도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의 조건들과 유능함에 대하여 배설물(dung)과 같이 여긴다고 말합니다(3:4~8). 그가 이러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아덴(아테네)에서의 전도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좌절하고 낙심한 상태에서 오직 주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는 오히려 전도자로서 더욱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 낫기 위해서 세 번 주께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고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강한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대하여 바울은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고후12:9). 그는 자신의 병이 결국 자신을 낮추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전도자로서 남은 생애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궁궐에서 40년 동안을 살아오면서 지도자로서 충분한 훈련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을 바랐고, 히브리 사람과 이집트(애굽)사람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는 담대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자로 쓰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고, 양을 치는 목자로서 40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그의 앞에 나타나셨고, 그를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부르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자신을 완전히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버려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지와 생각만으로 삶의 열매를 맺으려 한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자아를 버리고 주님께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들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열매들을 맺기 원하십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정 관념을 벗어 던지고, 오직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을 때 맺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입문하는 첫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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