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누가복음11:5-8)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도의 형태가 다양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찬양, 경배, 감사, 간구 등 대부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것들이 기도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도는 기도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더불어 언제나 같이 쓰여지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간구"라는 단어입니다. 간구라는 말이 기도와 더불어 항상 같이 쓰여지는 이유는 그 뜻이 가지는 의미가 기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 걸쳐서 "기도와 간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풍성해질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구하는 것

 

일반적으로 간구의 의미는 "구하거나 요청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의미는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 성경에서는 "supplication"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탄원하거나 애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어떠한 것을 기대하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심정으로 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닭에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할 때 반드시 기도와 간구를 했다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결코 하루 이틀 사이에 응답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응답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문제가 해결이 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사도행전1:14)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내 대신 보내 줄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언젠가 주시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애원하며 기도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 가운데 임한 성령의 충만함은 단순히 주님의 일방적인 공급에 의해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더욱 놀라운 역사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러한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즉 간구하는 자의 기도는 계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기도와 간구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4:6,7)

 

바울은 먼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기도와 간구로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영적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루어야만 하는 자들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탄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기 위해서 들락거립니다. 만일 단순히 대처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울은 기도뿐만 아니라 간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함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의 과정을 승리하려면 반드시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와 간구는 반드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6:9)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구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응답 받을 때까지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욱 분명한 사실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응답의 시기에 대하여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권한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대하여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복음을 들어야만 하는 이가 있다면 기도와 간구를 지속할 것을 권합니다. 그 응답이 속히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대하여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기도와 간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끈질기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누가복음11:8)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필요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자기에게 찾아온 친구에게 줄 빵이 없어서 밤중에 빵을 구하기 위해 친구를 찾아가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온 식구들이 자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를 깨우고는 떡을 달라고 졸라대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여행 중에 지친 친구를 대접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체면이나 한 밤 중에 자고 있는 친구의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 가족을 깨워서라도 떡을 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친구를 통하여 떡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이후에 중요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비록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 주지 않았을지라도 귀찮게 졸라대므로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간청은 영어로 "importunity"인데 이것은 "끈질기게 조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유순한 기도만을 고집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때로는 이처럼 끈질기게 조르듯이 하는 기도에도 응답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만일 한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서 떡을 구하는 자가 신사적이고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면 그는 결코 친구를 찾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먼 곳에서 여행을 온 친구에게 배가 고프더라도 날이 밝기까지 기다렸다가 빵을 먹자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친구가 오랜 여행에 지쳐서 앉아있는 모습을 더 이상 가슴이 아파서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체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상황도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는 한 밤 중에 자고있는 친구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의 친구의 배고픔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집요함이 그를 무례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가 빵을 구할 수 있었으며, 더불어 여행 중에 지친 친구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한 과부의 기도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18:2-5)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비슷한 내용의 가르침을 또 하나 엿 볼 수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대적에게 원수를 갚아 주기를 원하는 한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있어서 재판관을 괴롭게 만들기까지 만들었던 것입니다. 재판관이 그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했던 것은 그녀의 간절한 호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과부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이처럼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해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누가복음18:7)

 

우리는 기도에 대한 많은 이론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야 응답 받는 기도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들에 의해서 보다 논리적이고도 짜임새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반드시 형식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형식을 갖추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끈질기게 조르는 사람들이 결코 형식과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때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체면이나 예의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자세를 갖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구하는 자는 주님 앞에 자신의 체면이나 환경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상황에 대하여 미리 짐작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 응답해 주시지 않을거야"하고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대하여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도 주님은 응답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누가복음11:9,10)

 

우리의 기도는 결코 일회적이어서는 않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가 단순한 의무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모임에서 기도했다고 해서 그 기도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니, 기도의 내용이 지속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남은 생애동안 계속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절박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주님께 끈질기게 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주님이 반드시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응답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구하십시오!

보다 간절히 구하십시오!

아니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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