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바울이 보는 가정

조회 수 2689 추천 수 0 2010.06.05 11:11:12

18 장 바울이 보는 가정

 

현대인의 가정 파괴 현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미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영향 아래서 교회는 규모를 더해갔고, 지금은 세계가 놀라는 기독교 복음화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들까지도 받아들임으로써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가정 파괴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혼율이 매우 높은 국가입니다. 물론 통계라는 것이 시시각각을 변하는 것이지만 얼마 전까지 한국도 46%에 달하는 가정이 이혼을 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결과 예를 중시했던 민족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우리는 놀라게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이혼율이 평균보다 낮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보고 있으며, 이혼에 대하여 그들과 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생명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선물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1. 가정을 지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는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배필로 주심으로서 가정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에게 있어서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사탄에게 시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었던 그들은 결혼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고, 또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장차 사람들을 천사들보다도 더 나은 존재들로 여기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사탄은 끊임없이 가정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힘써 왔습니다. 연약한 여자(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불순종하게 함으로서 결국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로 가정에 대한 개념들이 사라짐으로써 일부다처와 성적타락이 계속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키기도 했지만 인류의 역사는 계속해서 오늘날까지 가정을 파괴하고자 하는 사탄의 계획에 의하여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 5:14)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1:11)

바울은 많은 크리스챤 가정들이 대적하는 자들의 의하여 가정의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이 건전한 가정을 꾸려갈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을 지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또 다른 행위들이라는 점에 대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2:5)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극히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 혹은 자녀들의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평가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보고자 하십니다. 예를 들면 부부의 관계를 통하여 장차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모습을 보고,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고자 하십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전한 가정이 없이 건전한 교회 생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건전한 가정생활을 이루어 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2. 가정의 구원을 이루라

 

바울은 그의 서신을 보내는 과정에서 가정에게 문안하는 형식을 가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문안이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일상적인 인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상 초대교회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가정의 구원은 매우 필수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고전 16:15)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16:10)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16:11)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전 1:16)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이 신앙적으로 온전치 못한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집안에 속한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온 가족들이 경건한 삶을 사는데 많은 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정의 구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가정의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들은 가정모임을 통해서 정기적인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헌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정은 교회 안에서 헌신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건강한 가정 없이 건강한 교회도 없습니다.

 

3. 초대교회는 가정 단위로 교회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이미 초대교회의 형성 과정에서 모임의 형태가 오늘날과 같은 집단 형태가 아니라 가정중심으로 모인다는 사실에 대하여 살펴본 바 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의 교회 형태는 카톨릭 교회와 혼합종교의 형태로 변한 이후에 형성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형태는 가정의 파괴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초대교회가 가정 단위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 16:19)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16: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4:15)

교회가 집단 체제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면 자연히 가정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가정의 파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비록 교회는 재산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숫자는 많아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가질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집단 중심의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카톨릭 국가들이 객관적인 가정파괴의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혼율이 높은 것도 이러한 교회의 조직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현대교회가 교회 안의 각종 교리와 질서를 가르치는 데는 열중하지만 가정에서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게 하는 데는 소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교회에서는 가정 사역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는 모습을 보기는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기본 단위는 바로 가정이며, 교회는 이러한 가정이 모여서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건강한 가정교회가 없이 건강한 지역교회는 없습니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건강한 가정 없이 건강한 신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정은 교회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4. 가정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든지 안정된 모임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가 없는 안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자식이 부모를 가르치려 하거나, 혹은 아내가 남편을 다스리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건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잘못을 권면할 수는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통하여 여자가 남편을 통하지 않고 배우거나 말하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전 14:35)

이 말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미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이미 많은 여자들이 직분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으며, 사역자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자들이 교회 내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교회가 필요할 때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남편 몰래 헌금을 한다든지, 아니면 가정을 돌아보지 않고, 교회 일에만 전념하는 행동들이 교회에서는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건전한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질서 있는 생활은 모든 봉사보다 앞서야만 합니다. 가정의 질서는 주님의 교회 안에서의 질서를 축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 대하여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남편도 아내를 사랑함으로써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또한 자녀를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정의 질서를 알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교회와 영적인 질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질서 있는 가정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교회의 일을 맡은 자들은 먼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이혼한 목회자들을 보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정의 해체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목회를 계속하고 있으며, 또한 성도들에게도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혼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르침과 행위들은

결코 성경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교회의 일을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 3:4-5)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딤전 3:11-12)

물론 그리스도인이 이혼을 하거나 건강한 가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거나 그가 장차 받을 상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에 대하여 교회의 일을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에 덕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욱 큰 이유는 바르게 양육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앞서 말했듯이 바른 가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주님의 교회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결코 성도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은 자에게 목회자로 세우지 않는 경우들을 봅니다. 이것은 성경 안에서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만 감독과 집사로서 세울 수 있다는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결혼을 하지 않은 자가 주님의 교회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교회 내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은 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결코 자신에 대하여 감독이나 장로와 같은 호칭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사도로서 복음 전도자라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여행을 했던 자였고, 그 일을 위해서는 가정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를 오늘날의 목회자와 같은 위치에 둘 수 없습니다. 바울은 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자였지만 목회자에게는 반드시 결혼을 하고, 또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들에게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가질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바울에게 있어서 권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일을 맡을 자들에게는 건강한가정이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6. 이 땅의 집(가정)은 해체되고 장차 영원한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가정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하여 세상을 지배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인류는 싸움을 거듭하고 많은 가정들은 파괴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건강한 믿음의 가정을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정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나그네로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 동안만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에서 특정한 가정들을 위해 영원한 부자를 두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영원히 가난하게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또한 권력을 누리도록 하시지 않으셨고, 모든 시대마다 가정들을 특별하게 다루셨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 땅의 가정이 영원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가정들을 통하여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가정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남편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심으로써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서 누리게 될 삶의 모양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누렸던 모든 가정들을 해체되어 어떤 이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속한 이들은 이제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다가 올 세상에서 주님과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될 것이고,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과연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 기초가 되는 가정으로서 손색이 없습니까? 언제나 모든 마음들이 주님을 향해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하고 신실한 가정을 세워가기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부끄러움 없이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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