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바울이 보는 세례(침례)

조회 수 2653 추천 수 0 2010.06.05 11:02:31

14 장 바울이 보는 세례(침례)

 

침례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이방 로마종교와 기독교가 연합하여 생긴 카톨릭 교회에서조차도 초기에는 침례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거듭해 오면서 침례 의식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사람에게 물을 뿌리거나 붓는 형식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바울은 세례(침례)가 단순히 의식이 아닌 중요한 신앙의 고백을 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날 성도들이 이 세례(침례) 신앙 위에 믿음의 기초를 세우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매우 잘 못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거짓 전도자들과 선생들은 세례(침례)의 의미를 축소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침례)는 단순히 구원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의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세례(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믿는 자의 죽음, 묻히심, 부활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만일 이 복음의 기초가 되는 진리로부터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빠지게 된다면 그는 구원을 얻은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세례(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킴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2:12)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3-5)

이처럼 확실하게 세례(침례)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세례(침례)에는 묻히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나오는 과정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 그리고 다시 부활하심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고전 15:1-3). 복음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구원으로 인도받은 진리입니다.

이처럼 세례(침례)에는 복음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단순히 물 뿌림을 통해서 그러한 진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죄 씻음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온전한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2. 세례(침례)는 죄의 지배아래 있는 우리의 지난 인생이 죽고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는 우리의 부활을 말한다.

죽음이 있다면 곧 부활이 뒤따르게 됩니다. 만일 죽은 사실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의식만 두고 볼 때 물 뿌림은 몸은 그대로 두고 죄의 문제만을 씻는 의식과 같습니다. 만일 그것이 신앙으로 이어져 죄 씻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완전한 구원으로 이끌 수 없으며, 다시 태어남도 없습니다. 완전하게 죽었을 때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규례를 만족시키는 것은 물 뿌림이 아니라 몸을 물에 담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생명의 새로움을 얻었다는 것은 전에 죄의 몸을 벗어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새로운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세례(침례)가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여전히 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거듭남을 통해서 새로운 신분과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3. 세례(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옷은 사람의 몸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례(침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더 이상 죄의 몸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로 더불어 죄가 가려지고, 의인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3:26,27)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세례(침례)가 결코 죄 사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요일 1:7, 1:14). 세례(침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믿음을 드러내는 간증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결코 죄 사함을 받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례(침례)를 받은 자가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침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겠다고 하는 신앙의 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심과 같이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쓸 것이며, 또한 본이 되는 삶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4. 세례(침례) 주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얼마 전 어느 미국인 선교사님이 시무룩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한 교회로부터 더 이상 지원금을 보내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선교사는 많은 사람들을 구령하고 세례(침례)를 주었는데, 당신은 구령은 열심히 했지만 단 한 명도 세례(침례)를 준 적이 없으니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례(침례)를 주는 숫자가 그의 사역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3-17)

만일 오늘날 선교사의 기준으로 바울을 본다면 그는 형편없는 선교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많은 이들에게 세례(침례)를 주지 않았으며, 평생 그의 사역을 하면서 세례(침례)를 준 자가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적은 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였지 세례(침례)를 주는 일에 힘을 기울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이 몇 명에게 세례(침례)를 주었는가를 과시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자신이 몇 명 구원했는지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며, 세례(침례)에 순종하는 것은 세례(침례)를 주는 자가 아니라 세례(침례)를 받고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는 자신이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강요하기도 하고, 또한 세례(침례)를 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함으로써 억지로 세례(침례)를 받는 경우들도 허다하게 있음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잘 못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머리로 구원을 이해했다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그것은 매우 잘 못된 것입니다. 구원은 복음, 즉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을 믿었을 때 가능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사실을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구원입니다. 세례(침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능력 있는 목회자가 세례(침례)를 행한다 할지라도 받는 자가 충분한 믿음의 고백이 없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목회자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전혀 자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세례(침례)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5. 구약에서 세례(침례)의 모형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으로부터 나와 홍해를 건너는 것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받은 사실에 대하여 세례(침례)의 모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과정을 통하여 더 이상 애굽(이집트)에 속한 백성이 아닌 모세에 속한 백성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이 모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새로운 신분과 관련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을 빠져 나온 사실을 세례(침례)와 연관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세례(침례) 신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침례) 안에는 세상과의 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침례) 안에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로부터 벗어나 광야에서 주님의 인도를 받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세례(침례)에 대한 또 다른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세례(침례)는 한 몸, 한 성령의 모형

 

세례(침례)가 주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와의 한 몸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와의 연합을 포함합니다. 그럼으로써 온전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우리는 교회의 회원(지체)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침례)를 받아야 하는 규정을 정해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세례(침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의식으로서의 세례(침례)를 받지 않았다고 구원을 받지 않았거나 혹은 주님의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입증하고 서로 보임으로서 한 몸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4:5)

세례(침례)는 단순히 교회의 회원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고백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주님을 믿으며, 같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물론 사람의 생각들은 다를 수 있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하나여야 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세례(침례)의 하나됨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세례(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종이나 빈부관계, 혹은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관계없이 하나로 묶어줍니다. 그것은 바울 당시의 주장으로는 매우 파격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민족간, 세대간에 엄격히 분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뛰어 넘어 오직 한 믿음 안에서 세례(침례)를 통하여 동일한 신분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례(침례)는 단순한 규례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많은 영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례(침례)에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믿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바로 이 세례(침례)신앙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온전케 하고 또한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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