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바울이 보는 교회

조회 수 2867 추천 수 0 2010.06.05 10:48:28

주님의 교회는 구약시대에는 감추어졌었던 것으로 구약성경 어디에도 주님의 교회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 단어로서 불러 모아진 무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설교를 하는 과정에서 이집트로부터 홍해를 건넜던 모세와 그 백성의 무리를 가리켜 광야 교회”(7:38)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구절을 증거로 구약에도 주님의 교회가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이집트로부터 구별되어 불러 모아진 무리들입니다. 만일 그 이상의 해석을 하려고 한다면 성경은 자칫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교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는 모여진 자들을 가리켜 교회라는 표현을 쓰지만 언제나 교회를 말할 때 주님의 교회를 가정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것은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 하나님의 교회들(the churches of God),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the church of Jesus christ), 각 지역의 교회들로 표현되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모여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곳이라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곳은 주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교회(church) 그리고 교회들(churches)

 

성경 안에는 교회가 단수(church)로 쓰여 지기도 하고(고전1:2,10:32,11:22,15:9,고후1:1, 1:13,딤전3:5), 복수(churches)로 쓰여 지기도 합니다(16:4,고전11:16,16:1,고후8:1,1:2,1:22,살전2:14,살후1:4). 그것은 같은 의미로 쓰여 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church)를 볼 때는 오직 하나의 교회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지만 오늘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들(churches)을 말할 때는 지역교회(Local church)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경 안에서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면 교회를 설명하는데 혼란을 겪을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교단이나 연합체를 구성하여 자신들의 교회가 진정한 주님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중에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카톨릭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교회가 구원을 줄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조차도 교단을 형성하여 집단체제를 고집합니다. 어떤 설교자는 건전한 교단에 속하지 않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우주적인 교회(Universal church), 즉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교회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은 것이지만, 결코 바른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 못 된 것입니까? 그것은 이 땅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각 지역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이는 그럼 주님의 머리가 도대체 몇 개라는 말이냐 라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그 신비를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주님의 교회는 각 지역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위에 어떤 권위도 두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의 형태를 갖추었다.

 

오늘날의 교회들을 보십시오. 마치 중세의 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물들, 그리고 수천, 수만의 사람들, 거대한 기업을 방불케 하는 운영......이러한 것들은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고, 또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보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져다 준 거짓된 교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성경이 교회에 대하여 말하지만 그것은 신비(5:32)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건물의 형태를 가리켜 교회라고 표현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그 숫자의 개념에 있어서도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로 약속된 바가 있으므로 일단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교회의 외형적인 형태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웅장한 건물이나, 혹은 건물을 임대하여 간판을 내걸은 상태가 아닌 가정을 그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16:5)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16:19)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골로새서4:15)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빌레몬서1:2)

 

우리는 이 외에도 교회가 가정으로부터 파생이 되었다는 증거들을 많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던 마가의 다락방이라든지,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던 루디아의 집은 교회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초대교회가 어떻게 형성이 되어 갔는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의 화려함을 보고 드나드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가르침과 순종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교회당은 그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가 가정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십시오.

 

3. 교회는 가르침을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의 주변에는 교회 무용론, 즉 교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심히 부패되었고, 더 이상 주님께서 함께 하는 교회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교회는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각 지역교회로 모여야 하며, 그곳에 속해야 합니다. 물론 그곳에 속하지 않는다고 구원이 취소되거나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반드시 지역교회에 속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보낸 시기는 결코 훌륭하고 안정된 교회였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 못지않게 많은 거짓 진리들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분쟁하고 있었고(고전11:18), 방언을 포함한 은사의 문제로 혼란스러웠으며(고전14:4-12), 여자들의 문제로 시끄러웠으며(고전14:34,35)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지역교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며, 성도들은 그 교회의 지체(member)가 되어야만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던 것이지, 결코 교회를 떠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교회에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도가 교회의 지체로 있지 못하다면 그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르침은 때로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라면 당연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는 교회에 그것을 말할 것이며, 듣는 지체들은 그 말씀에 대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전4: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7:17)

 

바울은 그의 가르침을 분명히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른 가르침은 교회를 통하여 나옵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신비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교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스스로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양이 좀 우습지 않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가르치는 자도 있고, 배우는 자도 있으며, 봉사하는 자도 있고, 보호받아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하나의 몸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마치 섬겨야 할 지역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교회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마치 머리에 팔다리 없이 몸통만 가지고 건강한 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에 소속하십시오. 그것은 바른 믿음의 삶을 사는데 필수적입니다.

 

4.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 속했다.

 

많은 현대인들이 교회에 대하여 잘 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교회의 소유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마치 자신의 사업장으로 생각하기도 하며, 하나의 비영리적인 사회사업 단체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힘쓰고 있으며, 또한 일부에서는 상속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잘 못 되었다고 매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효과적인 교회의 운영에 있어서 때로는 필요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를 대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관(등기관리소)에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누가 그 건물의 주인으로 등록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까? 지금도 법원에는 교회의 분쟁으로 인하여 주인을 가려달라는 서류가 쌓여있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해결되었다 할지라도 대부분은 잘 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당연히 성경 안에서 찾아봐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살전2:1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1:22)

 

성경은 이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2,고후1:1,살후1:4,살후2:14). 성경은 교회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의 교회, 주님의 교회, 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것은 교회가 모여 있는 지체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지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여진 자들일 뿐입니다. 그들이 교회의 주인임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이는 매우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의 운영에 있어서 지체들의 헌금과 봉사, 그리고 헌신을 통해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교회가 세워졌다고 주인임을 주장한다면 그는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장차 주님으로부터 상속과 보상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교회를 위해 힘쓰는 것도 다만 장차 그들이 받을 상을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이지 만일 이 땅에서 훌륭한 교회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건물의 교회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이 주님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면 그것은 주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건물을 교회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건물을 치장하고 심지어 성전이라는 용어까지 동원하여 성도들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주님은 그분에게 속한 사람들을 교회라고 말씀하시며 다만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을 얻기 위하여 재산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이것도 역시 주님의 소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진정한 주님의 교회인지를 돌아보십시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주님께 속해 있어야만 합니다.

 

5. 교회에 속한 자들의 호칭들

 

호칭의 문제는 현대인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는 성도(saint)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만 약 40회 이상 나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 속한 자들을 가장 일반적으로 호칭할 때 쓰여 지는 단어였습니다. 성도(聖徒)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들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속한 자들은 거룩하게 구별되어 불러진 무리들이며, 그것은 교회 안에 속한 자들을 호칭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1: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4:21)

 

성도라는 호칭이 사용되어진 예들을 보면 대부분 무리들을 일컬어 사용되어졌다는 사실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한 개인을 호칭할 때 사용되어진 것이 아니고, 한 교회나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부를 때 사용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상대방을 부를 때 성도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호칭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있는 개인들을 호칭하는 단어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형제(brother)”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바울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서신에서 약 130번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부를 때 형제들(brethr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brethren)에게 문안하라(16:14)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brethren)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4:15)

 

형제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속한 이들을 호칭 할 때 바울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이 단어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한 형제로서 지낼 것에 대한 소망이 담긴 호칭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또 다른 호칭을 든다면 바로 믿는 자(believer), 즉 신자(信者)라는 호칭입니다. 이 용어는 흔히 사용되어지는 용어는 아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의 실체를 생각하면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11)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1:7)

 

교회는 믿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만일 그가 주님의 교회에 출석을 하고, 제 아무리 열심히 헌신을 하고 있어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에 속한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 즉 신자만이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에 믿는 자, 즉 신자는 교회 안에 속한 자들의 또 다른 호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의 신비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의 몸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를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한 때 한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가 주장한 "무리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그 개성에 맞는 성도들끼리 모인다는 것을 염두하고 한 말입니다. 가령 기도하는 교회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모이고, 성경공부를 즐겨하는 교회는 성경을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성도들이 모이게 되고, 구제와 봉사를 좋아하는 교회는 구제와 봉사를 필요로 하는 자들과 몸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모이고, 전도를 즐겨하는 교회는 자연히 전도하기를 즐기는 성도들이 모이게 될 것이고,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교회는 병자들과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교회가 가지는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온 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모든 몸의 기능을 손과 같이 하십시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당신은 그를 향해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몸의 기능은 각 지체마다 다른 역할을 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인 교회는 각 지체(성도)마다 다른 역할을 담당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고전12:14-21,12:4,5-8). 만일 성도들로 하여금 동일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한다면 그는 아마도 문제가 있는 지도자일수도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4:11,12)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몸에 약하게 보이는 것일수록 더욱 요긴한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고전12:22). 당신은 눈이나 입, 귀와 같은 것들이 강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러한 것들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몸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체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교회 안에 속한 성도들 가운데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온 성도들이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12:27)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1:23)

 

그렇다면 건강한 몸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한 마디로 생각에 따라 몸이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만일 생각 따로 몸 따로 움직인다면 이는 분명히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하고 있습니다(1:18,1:22,4:15,5:23). 만일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가지 않고 세상의 전통과 풍습을 따라 간다면 이는 분명히 정상적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오직 주님의 명령을 따라 힘 있게 운동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속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분의 몸입니다.

 

결론

 

지금 우리의 교회는 성경을 기초로 세워져 있습니까? 사람의 말과 세상의 전통위에 세워진 교회를 진정한 주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가리켜 "내 교회"(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에게 권면했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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