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바울이 보는 예수 그리스도

조회 수 2731 추천 수 0 2010.06.05 10:39:28

2 장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복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분을 말함에 있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수라는 이름만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혹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을 썼던 것은 예수라는 이름 안에 포함된 사람의 아들(人子)의 속성과 그리스도라는 말 안에 포함된 하나님(神性)의 속성을 따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둘 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참 구원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속성을 같이 생각하게 함으로서 그분이 참 구원자라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누구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만든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최초의 사람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3:38). 그리고 하나님의 의해서 창조되어진 천사들의 존재들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졌습니다(1:6,2:1,38:7).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made)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1:3). 바울은 빌레몬서와 데살로니가 후서를 제외하고 그의 모든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1:16,4:4,고전 1:9,고후 1:3,19,1:9,8:32,1:3,1:3).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단순히 신분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계신다는 것과 그로 인하여 죄 가운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구별된 분으로서 죄를 사하시기에 충분한 분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할 때마다 그분께서 이루신 사역을 함께 소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 죄 사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주시고 행하심에 있어서도 질서 있게 이루어지도록 하셨고(대하 29:35), 모든 창조와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질서대로 이루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있어서도 질서대로 행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시며(고전14:40, 2:5), 심지어 질서 없이 행하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도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살후 3:6). 이것은 천국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한 하나님 안에서도 분명한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고, 그분은 하나님의 한 속성을 지니시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질서에 따라서 하나님 아래 자신의 자리를 두셨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낮아지심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질서대로 살아가고 순종에 대한 가르침을 친히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창조로부터 모든 것들의 질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종하셨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 하신 분이시다.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 많은 사람들은 이 단어에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대부분의 이단 종교에서는 이 구절을 삭제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말하는 가톨릭에서조차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거짓 교리들을 전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암송되고 있는 사도신경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내용은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이 성경 구절을 보게된다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3:9)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15-17)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분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을 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또한 장차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내려오실 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본래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

 

왜 바울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을 지니고 오시지 않았다면 피 흘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사실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사람들의 것과는 그 근본적인 성분부터 다르다고 말합니다. 마치 외계인의 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피, 즉 보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피가 사람들의 것들과 다르다면 그분의 피는 우리들의 죄를 사하는데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물론 예수님의 피가 보통 사람들의 피와 같다고 말하는 것도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성경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일 3:5). 이 말은 곧 예수님의 피가 깨끗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피는 성분에 있어서 사람들의 것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사람들과 다른 피를 지니시고도 죄를 사하실 수 있으시다면 굳이 사람들과 같은 육신의 모양으로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상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영으로 세상에 오셨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요일 4:2,3). 예수님께서 완전한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은 구속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성경의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지식을 제공한다.

 

세상에서 완전한 지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또한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그것을 만든 이에게 묻는다면 매우 간단합니다. 한 폭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것을 그린 자에게 설명을 들으면 됩니다. 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곡을 이해하려면 그 곡을 만든 작곡자에게 물으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소설을 이해하려면 작가에게 물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이 세상을 지으신 분에게 물으면 됩니다.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3)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세상에 대한 모든 지혜와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그분이 없이는 만들어 진 것이 없습니다(1:15-17).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세상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박사나 교수를 찾아가야 옳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분의 다른 이름은 말씀입니다(1:1-3). 그렇습니다! 우리의 손에 들린 말씀은 곧 모든 지혜와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보다 바른 지혜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성경을 펼쳐 드십시오. 그러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나아간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가망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의지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잃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다가와야만 했고,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불순종의 결과는 결국 그들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로 이러한 모습은 변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8:15)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백성의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민을 가면 다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다릅니다. 그것은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신분에 있어서도 특별한 관계에 놓이게 됨을 의미합니다. 가령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출세를 해서 고위 공직자가 되었더라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는 통치자 앞에서 영원히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다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분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의 신분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분의 신분 아래 있습니다. 누구로 인하여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해함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실 수 없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화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2:16)

 

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 값을 치르신 분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죄에 대한 값을 치르셔야만 하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모두 죄인인 까닭에 죽는 모습을 보고 계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까? 그것은 성경에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6:23). 이 사망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면 그에 대한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물론 그 값은 누군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 일을 하셨습니까?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답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그렇습니다! 주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한 분만의 사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순종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7)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4)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3:2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신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에 대하여 순종하셨고, 결국 피를 흘리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모든 죄 문제를 처리하셨습니다. 그것은 완전하신 계획 속에서 완전하게 처리된 것입니다.

 

8.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시다.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예수님을 어린 양과 비교하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잡았던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 역시 그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거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예언 된 메시아를 증명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짐승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벨, 노아, 아브라함 등 구약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할 피가 필요했기 때문에 흠 없는 짐승을 드림으로서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유월절 사건은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빠져 나올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들에게 약속된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빠져 나오는데 있어서 최종적인 방법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 어린 양의 피가 필요했고, 그 피를 문에 발랐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그들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올 수 잇도록 만들어 주었고, 그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던 어린 양과 비교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사람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희생물이 되셨고, 이미 성경을 통하여 예언된 분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9.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바울이 선언하고 있는 복음은 세 가지의 요소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고전15:1-3). 그 가운데 부활은 장차 있게 될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우리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듯이 우리도 일으키실 것입니다(고전 6:1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으키셨듯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고후13:4). 지금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처소에 계시듯이(1:20), 우리도 또한 주님과 더불어 하늘에 처소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동일한 부활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살아 난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될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4)

결혼의 의미가 무엇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함께 머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일들에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우리가 장차 주님과 더불어 하늘의 일들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 한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고, 또한 그분의 처소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을 지성소로 보냅니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를 가지고 들어갔을 때에는 즉사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또한 짐승의 피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완전한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신을 온전하게 준비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사이를 화해하게 하는 일을 했던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화해시킬 수 있을까요? 바울은 그 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역할은 바로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했던 바로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자신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들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켰듯이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의 죄 문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해결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참 대제사장이시고, 또한 언제나 우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11.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재판관이시다.

 

이 땅에 환난이 오기 전에 휴거된 그리스도인들을 누가 심판하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대 뿐 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14:9,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물론 이 심판이 믿는 자들을 구분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심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자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받는다는 말씀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구원을 얻은 자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상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행한대로 상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행한 것이 없다면 그는 주 앞에서나 모든 구원받은 형제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얻게 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매우 공평하시며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의 모든 모습들을 알고 계시며, 장차 우리에게 좋은 상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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