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열 처녀

조회 수 4207 추천 수 0 2010.06.05 18:38:25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25:1~13)

 

마태복음 25장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논쟁이 되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이 내용은 소위 종말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난해한 내용이기도 하며, 대부분은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이용하여 구원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 구절을 교회시대에 적용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에 대하여 구원받지 못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 안에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교회 시대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는 열 명의 처녀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신부가 될 처녀, 즉 교회를 순결한 한 처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후11;2).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 있는 처녀들이 결코 교회를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 처녀들을 교회로 가정하여 생각한다면 신랑 되신 주님께서는 여러 명의 신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진리를 크게 벗어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처음부터 한 아내에 한 남편의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2:24, 19:5). 오늘날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원칙을 뒤집어 보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변하지 않는 것처럼 이 진리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교회 시대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섯 명의 처녀들에게 기름이 떨어졌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기름이 성령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시대에 성령이 소멸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결코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시대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됩니다. 신약 시대, 즉 교회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는 성령을 거두어 갔던 때가 있었습니다(51:11). 구원과 관련해서도 그들은 사울과 같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 대하여 양자됨을 결코 취소하시지 않습니다. 신부 된 주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모두 들림 받게 됩니다. 그 동안 성령은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모든 삶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내용은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얻기 위해 다른 다섯 처녀들에게 빌리려 했지만 실패하자 사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름을 얻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한 수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교회 시대를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은 오직 은혜로 얻어진다는 사실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 내용을 교회시대에 적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연옥을 주장하는 가톨릭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서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사람인 그들의 사제가 죄를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심지어 죽은 자들과도 교통하여 그들의 공덕, 혹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 진리입니다. 이것은 이미 교회 안에서 누룩과 같이 자라고 있는 매우 위험한 교리입니다.

 

이 비유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연속되는 환난을 거쳐 나온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교회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시대나 교회시대에 성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언제나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환난 시대에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구원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칫 졸며 자게 된다면 구원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교회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벧전4:7,5:8).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얻은 것으로 그들의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이후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완성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로부터 수많은 방해를 받게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비록 구원이 취소되는 경우를 경험하지는 않게 되더라도 최소한 주님 앞에서 회계보고 하게 되는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생명이 있는 자는 자라게 되고, 그의 지혜도 자라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을 방해하는 마귀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해야만 합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성령과 더불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나, 환난 시대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는 모든 일들이 결국 우리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언제나 깨어 있는 자세를 잊지 않는 성도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족한 것은 없는지, 마귀에게 틈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살피고 건강한 믿음의 삶을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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