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처녀의 비유

조회 수 3197 추천 수 0 2010.06.05 18:38:25

그때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으리라. 그들 중의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더니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등불을 가져가되 기름을 함께 가져가지 아니하였고 지혜로운 자들은 자기 등불과 함께 자기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더라. 신랑이 더디 오므로 그들이 다 졸다가 잠들었는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 오는도다. 너희는 그를 맞으러 나오라, 하니라.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자기 등불을 손질할 때에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의 등불이 꺼졌으니 우리에게 너희 기름을 나누어 주라, 하거늘 지혜로운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그리할 수 없노라. 우리와 너희가 함께 쓰기에 부족할까 염려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된 자들은 그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니라. 그 뒤에 다른 처녀들도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13)

마태복음 25장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오해되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이 내용은 소위 종말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무천년주의자들이나, 후천년주의자들에게는 가장 난해한 내용이기도 하며, 대부분은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결코 난해하지도 않고, 상징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전천년을 믿는,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7년의 환난시대를 거친후 천년왕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바로 환난시대에 일어나게 될 사건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용하여 구원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 구절을 교회시대에 적용하려는 자들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에 대하여 구원받지 못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 안에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장 역시 매우 억지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교회 시대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는 열 명의 처녀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신부가 될 처녀, 즉 교회를 순결한 한 처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후11;2).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 있는 처녀들이 결코 교회를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 처녀들을 교회로 가정하여 생각한다면 신랑 되신 주님께서는 여러 명의 신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진리를 크게 벗어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처음부터 한 아내에 한 남편의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창2:24, 마19:5). 오늘날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원칙을 뒤집어 보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변하지 않는 것처럼 이 진리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교회 시대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섯 명의 처녀들에게 기름이 떨어졌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기름이 성령님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시대에 성령이 소멸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결코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시대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 즉 교회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는 성령님을 거두어 갔던 때가 있었습니다(시51:11). 구원과 관련해서도 그들은 사울과 같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 대하여 양자됨을 결코 취소하시지 않습니다. 환난시대가 오기 전 신부된 주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모두 들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성령님은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모든 삶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내용은 기름이 떨어진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얻기 위해 다른 다섯 처녀들에게 빌리려 했지만 실패하자 사러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지금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름을 얻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한 수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교회 시대를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은 오직 은혜로 얻어진다는 사실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 내용을 교회시대에 적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연옥을 주장하는 가톨릭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서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사람인 그들의 사제가 죄를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심지어 죽은 자들과도 교통하여 그들의 공덕, 혹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 진리입니다. 이것은 이미 교회 안에서 누룩과 같이 자라고 있는 매우 위험한 교리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가르침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연속되는 환난을 거쳐 나온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교회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시대나 교회시대에 성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언제나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환난 시대에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구원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칫 졸며 자게 된다면 구원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교회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벧전4:7,5:8).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얻은 것으로 그들의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이후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완성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로부터 수많은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비록 구원이 취소되는 경우를 경험하지는 않게 되더라도 최소한 주님 앞에서 회계보고 하게 되는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생명이 있는 자는 자라게 되고, 그의 지혜도 자라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을 방해하는 마귀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해야만 합니다. 이일들을 위해서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성령님과 더불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교회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나, 환난 시대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는 모든 일들이 결국 우리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언제나 깨어 있는 자세를 잊지 않는 성도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족한 것은 없는지, 마귀에게 틈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살피고 건강한 믿음의 삶을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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