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나의 비유

조회 수 3116 추천 수 0 2010.06.05 18:37:03
그들이 이것들을 들을 때에 그분께서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즉시 나타날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되, 어떤 귀족이 자기를 위해 왕권을 받은 뒤에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십 므나를 건네주며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올 때까지 관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의 국민들은 그를 미워하고 그가 간 뒤에 소식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그가 왕권을 받은 뒤에 돌아와서 자기가 돈을 준 이 종들이 각각 장사해서 얼마나 벌었는지 알기 위해 이들을 부르라고 명령하니 이에 첫째가 와서 이르되, [주]여, 주의 일 므나로 십 므나를 벌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한 종아, 네가 매우 작은 일에 신실하였은즉 열 도시를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라, 하니라. 또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여, 주의 일 므나로 오 므나를 벌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르되, 너도 다섯 도시를 다스리라, 하니라.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여, 보소서. 주의 일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나이다. 주께서 엄한 사람이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나니 주께서는 맡기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시나이다, 하매 그가 그에게 이르되, 사악한 종아, 네 입에서 나오는 말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니 너는 내가 맡기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도다. 그러면 어찌하여 네가 내 돈을 은행에 넣어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더라면 내가 올 때에 이자와 함께 내 것을 요구하였으리라, 하고 곁에 서 있던 자들에게 이르되, 그에게서 일 므나를 빼앗아 십 므나 가진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주]여, 그에게는 십 므나가 있나이다, 하더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있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나 내가 자기들을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 저 내 원수들은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눅19:11~27)

한 므나의 가치는 일반 노동자들의 3개월 정도의 품삯으로 로마 화폐로 환산하면 약 100데나리온에 해당되는 액수입니다. 장사를 하기에는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매우 적절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시고자 했던 내용의 중심은 단순히 개인의 재능을 통하여 결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열 명의 종들, 즉 모든 이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습을 보고자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5:14-30에 나타난 달란트의 비유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 두 비유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두 비유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종들의 재능을 고려하여 각각 다르게 나누어 주었지만 므나의 비유에서는 종들에게 동일하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보상을 하는데 있어서도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의 뜻을 잘 이행한 종들에게는 같은 보상을 했지만 므나의 비유에서는 결과에 따라 다르게 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의 명을 거역한 종에 대하여는 무서운 형벌로 다스린 반면 므나의 비유에서는 그에게 맡겨진 므나만을 회수하는 것으로 끝냅니다. 이 외에도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단순히 얼마동안 여행을 했지만 므나의 비유에서는 귀족이 자기를 위해 왕권을 받은 뒤에 돌아오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위에서 보듯이 이 두 비유는 같은 비유라고 말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가르쳐진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비유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사명을 결코 그대로 방치해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그가 주님을 알고 밀접한 관계를 유자하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을 맡겼지만 소개되어지고 있는 종은 열 므나를 남긴 종과 다섯 므나를 남긴 종, 그리고 한 므나를 감추었던 종입니다. 이렇게 소개한 것은 아마도 일반적인 결과들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이 남긴 종, 그리고 적당히 남긴 종, 마지막으로는 전혀 장사를 하지 않은 종의 모습을 통하여 교훈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에 대하여는 그들이 주어진 것을 가지고 열심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결과만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에 대하여 묵묵히 일하고 그 결과만을 보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충성스러운 일꾼은 오직 그 결과를 가지고 주님께 다가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 므나를 가지고 온 종의 모습을 보면 충성스러운 종과 얼마나 대비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갖은 핑계와 변명으로 자신의 잘 못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대답을 보십시오. 그는 “내가 그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나이다. 주께서 엄한 사람이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나니 주께서는 맡기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오히려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오히려 자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그는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 귀족이 종에게 한 므나를 맡기면서 당부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장사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이 명령을 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알면서도 자신의 불순종을 의도적으로 숨기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또한 변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그가 이러한 처지가 된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면서도 충성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의 핑계와 같을 것입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물질과 시간이 넉넉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일에 바쁘고 주님의 일들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을 것으로 확신하겠지만 그들은 장차 다가 올 세상에서 큰 낭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특징은 안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모험이나 희생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한 므나를 맡은 종은 자신이 장사를 하여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주님의 일을 하려는 자들이 자신으로 인해 교회가 큰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결코 새로운 일들에 대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게으르고 충성스럽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이 안전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을 잘 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장사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충성스럽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주인이 돌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은 왕권을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상당히 오랫동안 먼 나라로 떠나 있어야만 했습니다. 종은 안돌아 올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 처음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확신이 점차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주인은 왕이 되어 돌아왔고,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자신의 가진 것마저 빼앗겨버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힘쓰며 살아가지만 지치고 힘들어서, 혹은 속이는 자들로 인하여 그 확신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믿음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오십니다.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의 모습을 고대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에 대하여 충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한 일들에 대하여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하며,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을 멀리할 때 반드시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사함으로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많은 열매를 맺은 자들에 대하여 주님은 그 수고에 합당한 보상과 기쁨을 주시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안일하게 살아가는 자들에 대하여는 책망과 함께 그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조차도 거두어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부디 하루하루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들을 주 안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많은 열매가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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