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조회 수 14116 추천 수 0 2010.06.05 18:32:47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고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녀가 그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 대적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소서, 하되 그가 한동안 들어 주지 아니하였으나 나중에 속으로 이르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지만 이 과부가 나를 괴롭게 하므로 내가 그녀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항상 와서 나를 지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비록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 곧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향하여 오랫동안 참으실지라도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1~8)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비교하여 기도의 필요성을 설명하려고 하십니다. 이 비유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대적에게 원수를 갚아 주기를 원하는 한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있어서 재판관을 괴롭게 만들기까지 만들었습니다. 재판관이 그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했던 것은 그녀의 간절한 호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과부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이처럼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해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많은 이론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야 응답 받는 기도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들에 의해서 보다 논리적이고도 짜임새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반드시 형식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형식을 갖추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끈질기게 조르는 사람들은 결코 형식과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체면이나 예의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자세를 갖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구하는 자는 주님 앞에 자신의 체면이나 환경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상황에 대하여 미리 짐작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 응답해 주시지 않을거야"하고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대하여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도 주님은 응답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눅11:9,10).

우리의 기도는 결코 일회적이어서는 않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가 단순한 의무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모임에서 기도했다고 해서 그 기도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니, 기도의 내용이 지속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남은 생애동안 계속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절박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주님께 끈질기게 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주님이 반드시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응답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간구의 의미는 "구하거나 요청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의미는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 성경에서는 "supplication"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탄원하거나 애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어떠한 것을 기대하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한 심정으로 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닭에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할 때 반드시 기도와 간구를 했다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결코 하루 이틀 사이에 응답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응답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문제가 해결이 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내 대신 보내 줄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행1:14). 이 말은 그들이 "언젠가 주시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애원하며 기도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 가운데 임한 성령의 충만함은 단순히 주님의 일방적인 공급에 의해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더욱 놀라운 역사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러한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간구하는 자의 기도는 계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불어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기도와 간구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기도와 간구로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빌4:6,7). 우리는 매일 영적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루어야만 하는 자들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탄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기 위해서 들락거립니다. 만일 단순히 대처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울은 기도뿐만 아니라 간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함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싸워야만 합니다. 이 싸움의 과정을 승리하려면 반드시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가 필요한 것은 비단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와 간구를 지속할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엡6:18).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지체로서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지속적이고도 간절한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점차 입술의 기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간구하는 모습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일에 대하여 회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았던 이방인 재판관이 지칠 정도로 간절히 구했던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듯이 주님은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언제든지 들어주실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오늘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얼마나 간절하게 구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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