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비유

조회 수 7180 추천 수 0 2010.06.05 18:31:25

그분께서 또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게 하고 와서 그것의 열매를 구하였으나 하나도 찾지 못하니라. 이에 그가 자기의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이 삼 년 동안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니 그것을 베어 버리라. 어찌 그것이 땅을 버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가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되, 주인이여, 내가 그것의 주위를 파고 그것에 거름을 줄 때까지 금년에도 그것을 그대로 두소서. 만일 그것이 열매를 맺으면 좋으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그 뒤에 그것을 베어 버리소서,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눅13:6~9)

 

전통적으로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상징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시80:8-11, 사5:2, 렘24:3, 호 9:10). 포도원에 왜 무화과나무를 심느냐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포도원에 여러 가지 과실수들을 심는 것은 보편적으로 있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왕하18:31, 미 4:4).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가 없는 백성들에 대하여 심판을 하시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류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또한 사랑하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죄에 대하여 보실 수 없으신 그분께서는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백성들에 대하여는 심판을 통하여 멸망을 시키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정상적인 나무라면 일 년에 한 번씩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무화과나무는 삼년이 지나도록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충분한 기다림이 숨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오랜 세월동안 기다려 오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를 베어 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스스로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쓸데없이 땅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손실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만 율법만을 붙들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다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심판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간에 등장하고 있는 포도원지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상징되어질 수 있는 분입니다. 이 포도원지기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에 의해서 베어지게 되자 여전히 금년에도 그대로 두고 만일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뒤에 베어버리자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형식적이며,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당시의 권력들과 타협하고 있었고, 하나님 왕국의 복음을 전했던 침례 요한의 외침에도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회개의 복음을 전했지만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고, 그분의 제자들을 통하여 여전히 포도원지기, 즉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관심이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심판하시려는 마음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회개의 열매를 맺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보듯이 예수님께서는 비록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지라도 다시 부활하셔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셨고, 승천하신 이후에도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들이 회개의 열매를 맺고 구원에 이르도록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멸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군에 의해 완전히 흩어지게 되었고, 20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버림받은 상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 이 세상의 멸망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이제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로 넘어왔습니다.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이 베어진 자리에 이방인이라는 새로운 나무가 심겨졌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지기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가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 심판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멸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멸망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워 완전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실 모든 준비를 완료하셨습니다. 다만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시며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회개의 열매를 맺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자신을 돌아보고, 만일 우리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형식과 습관에 머물러 있다면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죄 가운데 신음하는 자들이 있다면 속히 회개의 복음을 전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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