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조회 수 2794 추천 수 0 2010.06.05 18:30:41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누구냐? 그의 주인이 올 때에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을 치리자로 삼으리라. 그러나 그 종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 주인이 오는 것을 늦추시는구나, 하며 남종과 여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기 시작하면 그가 그를 기다리지 않는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잘라 내고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할 그의 몫을 그에게 지정하리라.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자기를 예비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그 종은 채찍을 많이 맞되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 (눅12:42~48)

청지기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가 어떤 꿈을 꾸든 그것을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뉴에이지적인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지기로서의 삶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청지기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결국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가 전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것도 가져갈 수도 없으며, 그 소유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분의 소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결국 그분의 것을 잠시 맡아서 관리했을 뿐입니다.

청지기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않고 주님께서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것임을 알고 그것을 신실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 열매를 거두고,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여 명예나 권세, 지식과 같은 것들을 얻게 되었을 때에도 그것이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존재하게 된다면 그것은 청지기의 정신을 크게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결코 자신의 생각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생각과 요구에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자라면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을 앞에 두고 어떠한 일을 행하기 전에 그분의 명령을 바로 알아 그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매우 모범적인 청지기였던 엘리에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창15:2). 그는 자신의 생각과 소신에 상관없이 이삭의 아내를 얻어오라는 아브라함의 명령을 들고 가서 결국 리브가를 데려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그도 내면에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집에 청지기로 들어가서 자신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함으로서 그 집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창39:4,6). 청지기는 다만 재산을 관리하는 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는 결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들, 즉 재산이나 명예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해서 함부로 사용하려 한다면 그는 결코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청지기로서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질 것이며(마19:28),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딤후2:12). 비록 세상에서는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되겠지만 장차 다가 올 세상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모든 세대에 걸친 그리스도인들은 한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만을 고대해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살고 있었던 세대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인내로서 재림의 시간을 늦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까닭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세대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려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앞에서 드러나실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충성스럽지 못한 청지기들에 대하여 단호한 심판이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충성스럽지 못한 청지기들이 남종과 여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는 장면들을 목격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분명한 사실은 자신들의 직분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매우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폭력적이고 무절제하며, 방탕스러운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청지기들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도 많이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재산을 늘리거나 명예를 지키고, 또한 얻기 위해서 힘쓰지만 그것이 주님께서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맡기신 사실에 대하여는 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도 속이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달려갑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고백을 했던 것과 같이 가장 어리석은 삶의 한 방법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하여 특정한 사람들에게 부와 명예와 권세를 오랫동안 지속하도록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세상에서의 부귀와 영화는 잠시 동안이면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청지기로서의 삶을 통하여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누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나누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적절한 공급을 하는 것은 청지기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제와 봉사들을 통하여 우리가 가진 재물과 지식, 그리고 명예를 적절하게 나눈다면 주님 앞에서 칭찬을 듣는 성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삶의 모형은 절제된 삶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함부로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결코 낭비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살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검소하며 규모 있게 사용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까?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본래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동안 우리에게 맡겨진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 칭찬 듣는 그리스도인, 아니면 책망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악하게 살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심판은 가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지혜로운 청지기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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