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농부의 비유

조회 수 2720 추천 수 0 2010.06.05 18:29:14

그분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그 주변에 울타리를 두르고 포도즙 짜는 틀 놓을 곳을 파고 망대를 세운 뒤 농부들에게 그것을 세주고 먼 나라로 갔다가 철이 이르매 농부들로부터 포도원의 열매를 받으려고 농부들에게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붙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니라. 그가 다시 다른 종을 그들에게 보내매 그들이 그에게 돌을 던져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그를 수치스럽게 취급하여 보내었거늘 또 다시 그가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밖에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이니라. 그에게 아직 한 아들 곧 그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런 까닭에 그가 마지막으로 그도 그들에게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으나 그 농부들이 자기들끼리 이르되, 이 사람은 상속자니 오라, 우리가 그를 죽이자. 그러면 그 상속 재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밖으로 내던졌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가 와서 농부들을 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막12:1~9)

이 비유의 일차적인 대상은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말하고 있는 대상이 그들이며, 또한 그들이 행했었던 모든 상황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포도원을 만들어 울타리를 둘렀다는 것은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서 다루셨다는 의미이며, 포도즙 짜는 틀을 놓을 곳은 예루살렘 성을 상징하며, 망대는 성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실현하기 위해 쓰임 받았던 특별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그들에게 세를 주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암시합니다. 세를 주었다는 것은 결코 소유가 농부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모든 관리를 하고 있더라도 그 소유가 주인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이 결코 그들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의 소유가 주님에게 있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주인이 농부들에게 일을 맡기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그들에 대하여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을 맡길 수 없다면 주인은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길 만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 대한 주님의 신뢰와 오늘날 교회를 향한 주님의 신뢰와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모든 시간에 걸쳐서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백성들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수고할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충격전인 사실은 추수 때가 되어 주인이 종들을 보내 포도원의 열매를 받으려 하자 오히려 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내더니, 또 다시 종들이 오자 돌을 던져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그를 수치스럽게 취급하여 돌려보내고, 급기야 다시 종이 올 때에는 그를 죽이고 또 그밖에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악해져 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주님의 종으로 활동했던 많은 대언자들이 이같은 수모를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를 때린 것이나(렘 20:1,2), 이사야를 죽인 것이나(히 11:37), 스가랴를 돌로 친 것(대하 24:20,21)을 들 수 있지만 대언자들을 대했던 유대인들의 악행과 박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기 직전 침례 요한을 죽였던 모습까지 계속되어졌던 일들입니다.

이처럼 많은 종들이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들을 지속적으로 보낸 것은 여전히 자신의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은 여전히 농부들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신뢰가 없었다면 당장 그들을 심판하여 멸할 것입니다. 주인은 결국 자신의 아들까지 포도원에 보냅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수많은 대언자들을 보내셔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함께 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기적과 표적들을 통하여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결과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에 대한 대답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입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자신이 죽으실 것에 대한 암시를 하신바가 있습니다(마16:21;17:23;20: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의 의식인 사도신경으로 인하여 마치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인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은 예수님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던 자이며, 심지어 손을 씻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던 자입니다(마27:24~25). 오히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일을 맡겼던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일들을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맡길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을 멸망시켜 흩으셨고, 이방인들을 통하여 그분의 영광스러운 일들을 지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비록 이 비유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신 것이지만 그분의 성품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날들을 위한 일들은 주님의 교회에게, 더욱 구체적으로는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에 유대인들이 행했던 것처럼 그분의 종들을 때리고, 핍박하며,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심판하신 것과 같이 온 인류를 대상으로 심판하실 날이 곧 오게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의 날들을 잘 준비하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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