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품군의 비유

조회 수 3311 추천 수 0 2010.06.05 18:26:53

하늘의 왕국은 마치 품꾼들을 고용하여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아침 일찍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가 하루에 일 데나리온씩 주기로 품꾼들과 합의하여 그들을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세 시쯤에 나가서 시장에서 놀고 서 있는 다른 자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무엇이든 정당한 것을 주리라, 하매 그들이 자기들의 길로 가니라. 또 다시 그가 여섯 시와 아홉 시쯤에 나가서 그와 같이 하고 또 열한 시쯤에 나가서 놀고 서 있는 다른 자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온 종일 여기서 놀고 서 있느냐? 하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이다, 하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무엇이든 정당한 것을 너희가 받으리라, 하니라. 저녁이 되매 포도원 주인이 자기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마지막에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처음에 온 자까지 그들에게 품삯을 주라, 하니 열한 시쯤에 고용된 자들이 와서 각각 일 데나리온씩 받으니라. 그러나 처음에 온 자들은 와서 자기들이 더 받을 줄 알았는데 자기들도 마찬가지로 각각 일 데나리온씩 받았으므로 그것을 받은 뒤에 그 집 주인을 향해 투덜거리며 이르되,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는데 당신이 그들을 짐과 낮의 열기를 견딘 우리와 같게 대우하였나이다, 하니 그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하지 아니하였노라. 네가 나와 일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을 가지고 네 길로 가라. 네게 준 것과 똑같이 내가 마지막에 온 이 사람에게도 주리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느냐? 내가 선하므로 네 눈이 악하냐? 이와 같이 마지막인 자가 처음이 되고 처음인 자가 마지막이 되리니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 하시니라. (마20:1~16)

하늘의 왕국, 즉 천국을 비유함에 있어서 포도원을 예로 드는 것은 성경 안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이처럼 포도원이 천국에 대한 비유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포도원이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라는 과일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원이 천국으로 비유되는데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포도나무가 반드시 심는 자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한 농부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많은 과일들이 있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주인의 손에 의해서 자라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도나무는 그 열매만을 필요로 하는 식물입니다. 다시 말해서 포도나무는 목재로서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식물입니다.

포도원이 천국에 비유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식물의 특성과 매우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어느 한 민족이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민족과 세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어져 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심겨져 오고, 자라왔습니다. 모든 세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포도나무가 목재로서는 전혀 가치가 없고 오직 열매만을 필요로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 즉 재물과 명예, 권세와 지식과 같은 것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으시며,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 맺는 영적 열매만을 가치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포도원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천국의 모습들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일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는 품꾼들을 고용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용이 일방적인 적이 아니라 서로 간에 합의된 것이라는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복음의 초청에 먼저 참여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응했던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약속이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로 약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명령하시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와 더불어 서로 합의하고, 또한 약속된 것들에 대하여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과는 어떠한 합의를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며, 번성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멸망의 위기 속에서도 그들을 끝까지 붙드시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왕국을 전하는 일들에 대하여 게을리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그들 자신의 것으로만 여기고, 숨기려 하며, 심지어 그분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들까지 행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주님께서 그들과의 약속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지킬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아래 살아가고 있는 민족입니다.

여기에 더할 것은 이방인들과도 합의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한다면 구원을 보장하시며, 또한 그분의 일들을 위해 수고한 만큼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지금도 여전히 포도원 일꾼을 부르시듯이 하나님 왕국의 일들을 위해 수고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자들은 마치 “놀고 서 있는 사람”에 불과 합니다. 그들이 비록 세상에서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를 위해 수고하고, 명예나 권세를 얻기 위해 힘쓴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헛된 일들을 위해 수고하는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의 왕국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장차 우리에게 아무런 보상을 안겨다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포도원 밖에서 놀고 서 있는 자들과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보상이 정당하게 지급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침 일찍 포도원에 부름을 받은 자에게는 일 데나리온을 약속하지만 이후에 온 자들에 대하여는 정당한 보상을 약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일하는 자는 많이 얻게 될 것이며, 적게 일하는 자는 당연히 적게 받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나중에 온 자들도 일 데나라온의 품삯을 받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주인이 약속한 것은 정당한 보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속이는 자들은 구원의 안전만을 믿고 구원을 받으며, 그의 삶이 어떠해도 관계가 없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대되는 논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많은 곳을 통해서 심는대로 거둘 것이며, 수고해야만 먹을 수 있으며,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를 얻는 만큼 하늘에서도 보상이 주어질 것에 관하여 교훈하고 계십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공평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의 일꾼을 쓰시는 시간적인 차이를 생각해 봅시다. 주인은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한 후에도 세 시, 여섯 시, 아홉시, 열한 시에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는데 한 가지는 포도원의 일꾼이 언제나 적어서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간에 관계없이 일꾼을 부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그분의 왕국을 위해 수고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곳은 언제나 많은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주님은 그 일들을 위해 수고한 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주인이 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온 종일 여기서 놀고 서 있느냐?” 라고 묻자 그들은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일꾼들의 하소연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비교하여 말한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고, 명예, 권세를 위해 수고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봐서는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수고는 헛된 것일 뿐이며, 그들은 소득이 있는 인생을 살기 해서 반드시 하나님 왕국의 백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루고 사신 주님의 교회에 속한 자로서 살아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 포도원에서 일한 자들의 모습은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가 일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먼저 온 자들은 시기심이 발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중 온 자는 상대적으로 감사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결론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느냐? 내가 선하므로 네 눈이 악하냐? 이와 같이 마지막인 자가 처음이 되고 처음인 자가 마지막이 되리니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라는 말씀으로 정리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많은 관습들과 고정관념들은 오히려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직 주님의 명령과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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