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

조회 수 3281 추천 수 0 2010.06.05 18:26:11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18:9~14)

세상 모든 종교의 특징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의로워지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자신의 경건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종교적 우월성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합니다. 바로 이러한 종교적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서 교훈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종교적인 바탕 위에 믿음을 가지려 했던 유대인들을 향한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종교성을 가진 자들을 대표하고, 세리들은 당시에 가장 천하게 여겨졌던 죄인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당시 사람들이 정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판단을 기준으로 의롭다고 말씀하시는가 입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이 기도하는 자세를 봅시다. 그들은 서서 홀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도가 반드시 무릅을 꿇고 머리를 숙인채로 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바리새인들의 자세는 상징적으로 위선과 교만을 가득 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가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극히 형식적이고, 단지 습관적 행위로서 실행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홀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은밀하게 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의도가 진정으로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들의 행동으로 봐서는 결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기도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두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경건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한 수단으로 그러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기도 내용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들은 울법을 완전하게 지킴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강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로워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많은 곳들로부터 그들이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인이 된 사람을 부르러 오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5:32). 그들은 스스로 구원받을 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지만 실제로는 구원받지 못한 종교인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인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과는 다르게 세리들은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으로 인하여 성전 가까이에도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다르게 어떠한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하며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가슴을 치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가슴을 치는 행위는 당연히 그들의 죄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애통하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말도 역시 단 한 마디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주님의 긍휼이 없다면, 즉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절박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일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주님 앞에 낮아진 모습으로 겸손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 중에 세리가 더 의롭다는 판결을 내리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의 기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은 우리의 율법적인 행위와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즉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모습을 알고 그 문제의 해결이 자신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주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음을 믿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직도 많은 속이는 자들이 와서 여전히 율법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복음을 말하지만 종교성에 기대어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세상과의 분리를 강조하여 믿는 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도록 만듭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은 인간의 공로에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것이고, 세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 믿음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종교인입니까? 아니면 복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자신이 구원 받았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든지 이 세리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구원은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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