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비유

조회 수 2313 추천 수 0 2010.06.05 18:25:25

그때에 한 사람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자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능히 들어가지 못하리라. 집 주인이 한 번 일어나 문을 닫으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며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여도 그가 너희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라. 그때에 너희가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께서는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할 터이나 그가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다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있고 너희 자신은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왕국에 앉으리니 보라, 마지막인 자로서 처음이 될 자도 있고 처음인 자로서 마지막이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눅13:23~30)

이 비유의 시작은 “주여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이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하여 많을 것인지, 아니면 적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기대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다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으로 대신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많은 자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능히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서 구원 받을 자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적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심으로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두시려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얻을 자가 적다고 해서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자들이 구원받을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으로 미리 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힘쓰라”라는 단어에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구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결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쉽게 설명을 하자면 구원 얻는 방법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선택하는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하는 순간 어떠한 반응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이들은 우리를 조롱하고, 모욕하기도 했으며, 우리 자신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하여 수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길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갈 수 없노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구원의 길이 과거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힘쓰라”는 단어를 현재형으로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원에 일회성이지만 그 삶은 현재까지 지속적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번에 완성하신 것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얻은 성도들의 삶은 끊임없이 싸워야 하며, 그것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힘겨운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좁은 문에 대하여 보다 냉정한 주님의 가르침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한 번 닫으면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한 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 즉 좁은 문은 기회를 놓치게 되면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 날에는 모든 것이 끝나고, 구원의 문도 닫혀 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속이는 자들은 연옥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비록 구원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게 되더라고 구원 얻을 수 잇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한 번 닫힌 구원의 문은 결코 열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우라가 여기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보게 되는데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이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께서는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적절한 교제를 하였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구원의 대열에 함께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물론 우리는 이것이 일차적으로는 유대인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요? 결코 그렇게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안에서도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마7:22).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 대하여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7:23)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아무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능력을 행하고 가까이 있다 할지라도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서 구원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이 속아왔던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주님은 이들에게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분명하게 제시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 즉 그 뜻을 기록한 말씀인 성경을 따라 사는 자라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말과 거짓된 능력들에 현혹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그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의 구원은 결코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즉 그분의 뜻을 따라 길을 걷고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이 비유의 결론을 내면서 매우 의미 있는 한 마디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인 자로서 처음이 될 자도 있고 처음인 자로서 마지막이 될 자도 있느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정관념의 틀에 빠져 습관적인 믿음의 생활과 진리에 관심도 없이 하루하루를 주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살아가게 된다면 그도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아야만 하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며, 그분의 뜻, 즉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있었을 때 온전한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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