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시는 하나님(호2:21-23)

조회 수 2949 추천 수 0 2010.06.07 14:58:01

『그 날에는 내가 들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나는 하늘들의 말을 듣겠고 하늘들은 땅의 말을 듣겠으며 땅은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말을 듣겠고 그것들은 예스르엘의 말을 들으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녀를 땅에 심고 긍휼을 얻지 못하였던 그녀에게 긍휼을 베풀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며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리라, 하시니라』(호세아 2:21-23)

 

하나님은 이미 고멜에게서 나온 자녀들은 '로루하마' '로암미'라고 이름을 짓게 함으로서 그들이 긍휼을 입지 못할 것이며 내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암미' '루하마'라고 부르심으로서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스러운 말씀으로 2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일일이 열거하심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은혜로 구원하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복음의 출발점은 언제나 죄인임을 알게 하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사는 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가식적이요,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음란한 여인 고멜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세상과 간음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얻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어지기 바랍니다.

 

드러난 죄와 숨겨진 죄

 

『너희 어머니와 변론하고 변론할지니 이는 그녀가 내 아내가 아니요, 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런즉 그녀로 하여금 자기 눈앞에서 행음을 버리고 자기 젖가슴에서 간음을 버리게 할지니라.』(2:2)

 

고멜의 부도덕한 행위는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음란한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 상태였지만 아직도 음행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인의 상태에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미 세상에서 하나님과 대적하며 살았던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장차 예수님의 신부의 자격으로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과거 음행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신분은 유지하면서 죄악을 일삼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죄악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여 버리라'는 말씀은 드러난 죄악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죄악 된 습관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이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남을 비방하거나 욕하고, 음란을 일삼으며,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스도인 된 자들은 그 삶도 함께 변화될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미 고멜이 아내가 되었어도 음행을 일삼고 있는 한 아내가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곧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앉아있다 할지라도 과거의 죄악들을 내려놓고 회개하며, 변화 받은 삶을 살고 있지 않는 한 성도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죄악 된 습관들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젖가슴에서 간음을 버리게 하라'는 말씀은 숨겨진 죄악을 없애라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마음으로 지을 수 있는 죄악이라도 없애야 한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마음으로 지은 죄악도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28)

 

그러나 숨겨진 죄악 중에서 더욱 심각한 것이 있다면 교회 안에 은밀히 숨어 들어온 거짓 진리, 거짓 영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이유가 죄악 된 생활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사실상 가장 큰 이유는 우상을 섬기는데 있었습니다. 여기서 호세아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들 중에 은밀하게 행해지는 우상숭배를 겨냥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도 알고 제사도 드리지만 동시에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서 말하고, 성경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 속으로 침투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종교의 풍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풍습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교회의 의식 속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영적 음행이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우리 안에 행해지고 있는 거짓 진리와 거짓 영들을 분별해 내서 잘라내는 일에 결코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질 만능 사상에 빠진 이스라엘

 

『그들의 어머니는 창녀 짓을 행하였고 그들을 수태한 여인은 수치스럽게 행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따라가리니 그들이 내게 내 빵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마실것을 준다, 하였음이라.』(2:5)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방 신들이 그들에게 물질질인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신은 '풍요의 신' '생산의 신'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결국 그들이 세상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겠다고 하는 의지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육신적인 안정과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없는 종교라면 결국 외면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를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신앙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도할 때 복음은 뒷전에 두고 교회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한 후 데려오기도 합니다.

 

사실상 교회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놀라운 성장을 보여 왔습니다. 교인들이 잘 살고 형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면 성경에서 뿐만이 아니라 철학과 의학 등 모든 분야에서 적용을 시켜왔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최면술을 배워 기도에 이용하는가 하면, 긍정적 사고를 갖게 하기 위해 집중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교수와 의사가 강단을 대신하기도 하고 연예인이 강단에서 더욱 존경받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익을 위해서 영원한 축복과 은총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언제나 배척당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질 만능 사상은 우리를 크게 실망시킬 뿐만 아니라 진리를 변질 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디 잠깐의 유익을 위해 영원한 것을 잃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보이는 것은 잠깐 있을 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니라.』(고린도후서 4:18)

 

우상 숭배가 주는 결과

 

『그녀가 바알들을 섬긴 날수대로 내가 그녀에게 징벌하리니 그 때에 그녀가 그것들에게 분향하고 귀고리와 보석으로 자기를 치장하며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따라가고 나를 잊었도다. 주가 말하노라.』(2:13)

 

우리가 염두 해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혼합주의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멜이 호세아의 아내이면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형편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역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동시에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도하는 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아내나 남편보다도 정부에게 더욱 마음을 두듯이 이스라엘도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바알과 아세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도하는 자들의 결과가 언제나 비참하듯이 이스라엘의 장래 또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것이 호세아의 예언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육신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해 했던 시간만큼 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세상과의 타협, 그리고 이방 종교와의 타협을 통해서 육신적인 안정과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할 사실은 어떠한 형태이든 하나님을 떠나있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모든 일을 심판하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이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자리라면 포기하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내가 나를 위하여 그녀를 땅에 심고 긍휼을 얻지 못하였던 그녀에게 긍휼을 베풀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며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리라, 하시니라 』(2:23)

 

이스라엘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끌어당겨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위로하는 말로 이르고』(2:14)

 

역사적으로도 하나님은 많은 지도자들을 설득하시고 쓰셨습니다. 고향을 떠나기를 망설이는 아브라함,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오기를 주저하는 모세,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건져 낼 지도자가 되기를 거절하는 기드온을 설득하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집요함을 잘 드려내 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상황과는 매우 다릅니다. 왜냐하면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가 이미 음행을 일삼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설득하는 일을 중단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끊임없이 그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할 것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녀의 포도원을 그녀에게 주며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주리니 그녀가 거기서 노래하기를 어렸을 때와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던 날에 하던 것 같이 하리라.』(2: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심으로 절망의 상태에 있는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심판의 하나님만은 아닙니다. 죄인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돌이키는 자에게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상 이 땅의 많은 백성들이 절망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일부분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아 놓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낙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망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가 문을 열고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여 하늘의 영광을 맛보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다는 것입니다. 고멜을 선택한 것도 호세아였고, 그를 용서한 것도 호세아였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용서하신 것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도 하나님이시며, 죄를 용서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표현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나를 위하여 신실함으로 너와 청혼하리니 네가 주를 알리라.』(2:20)

 

주님은 우리에게 청혼을 하셨고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단순히 지식적인 관계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인격적인 만남을 계속함으로서 피차에 나누는 삶을 설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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