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결과(호세아9:6-9)

조회 수 2675 추천 수 0 2010.06.07 15:02:58

『이는, 보라, 그들이 멸망으로 인해 떠나갔음이라. 이집트가 그들을 모으고 멤피스가 그들을 묻으리니 그들의 은을 두는 좋은 장소는 쐐기풀이 차지할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나무가 있으리라. 징벌의 날들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들이 이르렀은즉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 것이라. 네 불법이 많고 미워함이 크므로 대언자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영적인 자는 미친 자가 되었느니라. 전에는 에브라임의 파수꾼이 내 하나님과 함께하였거니와 이제는 대언자가 그의 모든 길에 놓인 올무 곧 새 잡는 자의 올무가 되었으며 그의 하나님의 집에서 미운 것이 되었도다. 그들이 기브아의 시대에서와 같이 자기 자신을 심히 부패시켰나니 그러므로 주가 그들의 불법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들을 징벌하리라.』(호세아9:6-9)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망당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미 8장에서는 그들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상태에 대해서 보았고, 이제 9장에서는 그들이 당하게 될 멸망의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린 결과로 인하여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상황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되어지는 것임을 인식하고, 회개함으로 경건에 이르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대가를 사랑함에 대한 결과

 

『오 이스라엘아, 너는 다른 백성같이 기쁨으로 인해 기뻐하지 말지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을 떠나 음행의 길로 갔으며 모든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대가를 사랑하였음이니라.』(1).

 

그들이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대가를 사랑했다는 것은 추수의 때에 우상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어 좋은 곡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바알에게 감사를 함으로서 하나님의 분노를 샀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들은 이방 사람들과의 섞여짐을 통하여 행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추수의 때에 이방인들과 더불어 기뻐서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잊고 이방인들과 그들의 신들과 더불어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로마서11:36)

 

우리는 우리의 전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감사는 결국 바알을 따르게 되었고, 그들을 멸망으로 치닫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궁핍하게 하실 것을 선포하십니다(2). 비록 그들이 땅에서 수확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먹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로 만드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땅에서 살지도 못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이집트를 의지하여 그곳으로 피신한다 할지라도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6). 결국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나 타국에 가서도 궁핍함을 결코 면할 수 없었습니다.

 

타락의 증거 중 하나는 감사가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불만은 있으되, 감사 기도와 찬양은 멀어져 갑니다. 이는 결국 우리를 더욱 비참한 삶으로 몰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분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존재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그마한 행복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많은 자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돌아서서 세상을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감사가 사라지는 순간 닥치는 것은 궁핍한 삶입니다. 이 궁핍은 결코 물질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큰 부자가 하루아침에 거지와 같이 변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파산과 함께 자살하는 광경도 쉽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요하게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물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감사가 있는 자에게는 언제나 '행복'이라는 선물을 선사해 주실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의 결과

 

『징벌의 날들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들이 이르렀은즉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 것이라. 네 불법이 많고 미워함이 크므로 대언자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영적인 자는 미친 자가 되었느니라.』(7)

 

언제나 그러하듯이 백성들의 타락의 뒤에는 언제나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전통적으로 훌륭한 대언자들이 많았습니다. 가령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졌던 대표적인 대언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은 이미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대언자들은 이미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일을 하고 있었고, 영적인 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미친 자와 같이 되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모든 길에 놓인 새 잡는 자의 올무'라고 표현함으로서, 그들이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멸망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집에서 미운 것'이 되어버린 상태였습니다(8). 그들이 이처럼 되어버린 모습은 기브아 시대, 곧 사사 시대처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사사기21:25)

 

결국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백성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종인 그들이 주인의 명령도 듣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함으로서 백성을 멸망에 빠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혼란한 이 시대에 가장 빈번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뜻과 의지, 그리고 생활철학을 가르침으로서 성도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를 가리켜 '종'이라고 말합니다. 종의 자격은 결코 지혜롭거나 능력이 많아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인의 말에 충성하느냐에 따라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종이 주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오히려 주인의 말을 우습게 여겨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 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듣는 자들을 멸망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자손에게 내려지는 형벌

 

『에브라임으로 말하건대 그들의 영광이 태어날 때부터, 모태에 있을 때부터, 수태할 때부터 새같이 날아가리라. 그들이 비록 자녀들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들을 앗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또한 화가 있으리로다!』(11,12)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 되었던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한 것은 후손들을 하늘의 별들과 같이 셀 수 없을 만큼 자녀를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창15:5). 이 약속은 계속되어서 이제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끊임없이 보살펴 주셨고,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무화과에서 처음 익은 열매를 봄 같이 그들을 귀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돌보아 주셨던 것입니다(10).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이 더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브올, 즉 우상을 섬기는 일을 더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상태에 이르렀고,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멸망이 그들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에게도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1). 심지어 모태에 있을 때부터, 수태할 때부터 날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이 비록 자녀들을 기를지라도 그들을 앗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2). 그들을 모두 살인하는 자에게 넘길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멸망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볼 수 있게 합니다(13).

 

결국 이스라엘의 범죄는 그들의 후손이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멸망을 당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는 유대와 이방민족으로부터 조롱까지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한 때는 모든 민족의 지도자처럼 행동을 해 왔던 에브라임 족속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이 이제는 이방인보다도 못한 개 취급을 받는 민족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어느 민족이나 각별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정도로 자녀에 대한 사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민족성이 하나님의 품성을 많이 닮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자녀 사랑에 관한 부분만...) 어떤 이는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서 자녀를 공부시키고, 어떤 이는 죽음의 현장에서 자녀를 감싸 안고 죽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사랑의 방법이지만 자녀에게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군대에 가지 않도록 거액의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기도 하며, 부정한 방법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도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졌든지, 악한 양심을 가졌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은 자녀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과연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함으로 그의 자녀들이 멸망과 수치를 당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방탕한 삶을 산다면 우리의 자녀들도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 사랑에 대한 방법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돈이나 명예로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기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직 신앙을 유산으로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축복했던 것은 이를 잘 대변해 주는 것이며,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도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함으로서 진정한 유산이 오직 믿음밖에 없음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범죄 함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미칠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우리를 경건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오직 말씀으로 무장하고, 사탄의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잘 지켜 좋은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우리의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방랑하는 자

 

『그들이 내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그분께서 그들을 내버리시리니 그들이 민족들 가운데서 떠도는 자가 되리라.』(17)

 

하나님을 떠난 자의 결국은 방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서 결국 이방 민족들의 지배를 받고 떠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지배를 당했으며, 오랜 속박은 그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개 취급을 당해도 스스로 개 같은 인생임을 고백하는 처량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살아가는 의미조차 잃어버린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어떨까요? 이스라엘의 처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생일 것입니다. 사탄의 종노릇을 하면서 그의 권세에 굴복 당하고, 때로는 조롱을 당하며,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무기력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이 땅에서 제 아무리 출세를 한다 해도 만족할 수 없음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나그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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